내 인생의 우상偶像/ 삐투리
강변에도 봄은 무르익었다. 쭉쭉 뻗어가는 억새풀 사이에 들어앉아 중랑천 검은 물에 낚싯대를 담갔다.
봄밤이 깊어갈수록 풀향기는 강물에 녹아흐르는데, 초록빛깔 야광찌는 콘크리트를 부어놓은 듯 점점 굳어만 간다.
벌써 두시간째 찌가 꿈쩍하지 않는다. 산란기가 지나면 보통은 입질이 왕성해지는 편이다.
그런데도 붕어얼굴보기가 힘들다. 붕어는 물속의 미세한 변화에도 먹이활동을 하지않는 것 같다.
반경 한자만 넘어가도 입질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질이 까다롭다.
그래서인지 낚시꾼들끼리 자리다툼이 이따금씩 일어나기도 한다.
아무리 몰황일지라도 운좋은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인가보다.
무심하게 옆자리에서는 붕어가 올라온다. 두마리째다.
염치불구하고 옆 쪽으로 낚시 대를 바싹 붙였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젖국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왜, 뽀짝 붙는 거요?”
허공을 찢는 소리가 봄밤의 고요를 깬다. 화들짝 놀라 옆사람과의 거리를 재봤다. 어리짐작으로도 1미터가 넘는다.
낚싯대를 한 대씩만 펼쳤으니, 투척에 불편한 간격은 아닐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중랑천을 전세 냈소?"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에 고성으로 맞불을 질렀다. 강하게 반발할거라 예상했거늘 상대방은 오히려 어이없는 표정이다.
실바람을 타고 문득, 고향땅 가지산 보림사의 대낮 정경이 강물처럼 밀려온다.
일시에 터져버린 한여름의 농익은 햇살이 눅진하게 녹아 붙은 찜통더위를 피해,
스님과 함께 대적광전의 그늘로 모였다. 법당을 휘두르고 있는 검푸른 녹음이 머리위로 와르르 쏟아진다.
“학생! 담배 좀 이리 줘보세요!”
나의 선지식善知識인 대우스님이 손을 벌리며 쓰다듬듯 말을 던진다.
갑작스럽고 황당한 요구에 일순 당황했지만 호기심에 피던 담배를 순순히 건넸다.
담배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더니, 법당가운데로 들어가 비로자나불의 손바닥에 담뱃재를 턴다.
천년된 불상에서 풍기는 신령스러움이 있어 평상시에도 비로자나불 앞에 서면 괜스레 숙연해지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신령스런 손바닥에 담뱃재를 털고 있는 것이다.
“스님! 우~째 이란당가?”
어찌나 놀랬는지 더듬더듬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학생! 이곳 법당의 저 비로자나불은 부처가 아닙니다.
쇠로 만든 부처는 부처가 아니요,
나무로 만든 부처도 부처가 아니요,
흙으로 빚은 부처도 부처가 아닙니다.”
불교는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믿어왔던 내게는 벽력같은 일갈이었다.
스님의 말씀에 온몸의 가는 털들이 일제히 거슬러 일어섰다.
“스님! 그럼 머시 부처라?”
당돌하고 치기어린 질문에 스님이 천진스럽게 웃는다.
“업은 아기 삼년이란 말을 들어봤습니까?
아이를 잃어버린 갓난이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천지사방을 헤맸습니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삼년이나 찾아 헤맸던 아기가 등 뒤에 업혀 있었습니다.
부처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말끝이 땅에 떨어질 새라 조심스레 법문을 뱉는다.
“그러니까 나한테서 부처를 찾으란 말이네요!”
성급한 결론에도 스님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어느 덧 삼십년 시절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전전긍긍하며 매듭의 실마리를 홀로 풀었다.
쇠와 나무와 흙이 부처의 몸에 걸친 허깨비이듯, 남들은 단지 내몸에 걸친 허깨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는 내게도 있고, 내가 걸친 허깨비에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았던 너비라도, 중랑천의 낚시꾼에게는 장애가 됐을지 모른다.
젊은 시절 한때 먹었던 절밥은 사는 동안 줄곧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석탄일에는 발걸음이 닿는 데로 찾아가 절밥을 챙겨먹는 버릇이 생겼다.
더군다나 금년에는 종로에서 열리는 연등행사도 못 가봤다.
따라서 삼년 째 숙원이던 수종사로 발걸음을 떼야겠다.
세조가 석간수 물방울소리를 종소리로 착각하여 수종사란 사찰명이 생겼다한다.
초파일이 내일이다.
내일은 사찰에 있는 것이 불상이든, 우상이든, 허깨비든 개의치 않겠다.
집착을 버리라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詩를 받쳐 삼배를 드리리라.
바위틈 물방울은 범종의 울음소리요
숲속의 새들은 삼정헌三鼎軒의 시詩소리라
임금은 운길산에 종소리를 새기고
산승은 찻잔에 다茶와선禪을 따른다
무량한 법음法音이야 도량에 가득하여도
청풍이 건듯 분곳에 철쭉향만 그윽하여라 ( 제목/무아無我)
2013년 음력 4월 7일 장안철교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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