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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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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저편에./1>
바람에 실려온 이야기속에 가슴을 쓸어간 옛 기억이 있습니다.
토기풀속에 감춰진 네잎클로버를 작은 포켓에 접어 두고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무심히 마른 네잎클로버가 손바닥에 ‘톡’ 떨어졌을때 망상에서 오락가락 하는 흐린 필름처럼 가슴 뭉클 찾아드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름하나가 기억 저편에서 밀려오면 꼭 다음 입술사이로 삐죽이 고개내미는 수하!
강 수 하.
사랑은 긴 사막 사이로 긴장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 인지도 모른다.
타는 목마름을 뒤로하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은 시원함 속에 가둬진 질퍽함 처럼.
목숨이 달려있는 순간까지 인간은 절대 혹은 상대의 사랑을 찾아 살아가는 목적을 두는 타인의 근성를 가진 강한 독성 품은 미물의 모습으로 사랑을 찾는다.
사랑이라는 독 속에 가끔은 술취한 모습처럼 흐느적 거리기도 하고, 난폭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온순해 지기도 한다.
‘술’이 탄생하면서 ‘사랑’이 존재했는지 ‘사랑’이 생기면서 ‘술’이 필요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사랑안에 술이 갇히기도 하고 술안에 사랑이 머물기도 한다.
지루한 장마비 사이로 치아가 흔들릴만큼 시원한 맥주 한캔을 비우자 그녀가 남기고간 스트로베리 버블스의 딸기향이 달콤하게 코끗을 스민다.
그녀가 지나간 흔적은 여기저기 드문드문 새어나오지만 욕실선반에 앙증맞게 놓여있는 바디용품을 바라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장마비를 뒤로하고 후덥지근한 거친 피부 촉감에 샤워를 하며 거친 바스타월에 무심코 집은 그녀가 쓰다만 반쯤 남은 스트로베리 버블스를 바스타월에 묻혀 온몸을 구석구석 씻었을때 그녀의 냄새가 베이는것 같았다.
한강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배란다를 거닐며 맥주캔을 비울때까지 그녀에게서 풍기던 달콤한 과자냄새 같은 그향이 기상의 몸에서 묻어났다.
사랑은 희망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예요.....,,
수하가 쾡한 눈으로 마지막으로 기상에게 던진 말이였다.
그녀는 분명 사랑이 뭔지 인생이 뭔지 어린 나이였지만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사랑의 정의를 기상보다 먼저 말해주기 위해 거친 인생을 살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처음 만난건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한 교정을 지나 후미진 대학강단 뒷편이였다.
오랜만에 원고청탁 차 찾아갔던 오교수를 만나러 계단을 오르며 무심히 던진 시선속에 쭈그리고 앉아 무표정하게 맥주캔을 비우는 그녀를 본건 인상적이였다.
오교수방에서 서너시간을 넘기고 밖으로 나왔을때까지도 그녀는 꼼짝없이 차곡차곡 빈 맥주캔을 쌓아놓은체 그 자세 그대로였다.
왠 호기심이였을까.
움직이는 발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 곁으로 갔을때 파리한 모습이 왜그리 애처롭던지.....,,
대학 초부터 오랜 연인 관계였던 경애보다도 더 다정하게 느껴졌던 그때의 기분을 기상은 전율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는 낯선 남자의 출현으로 침착하게 자리를 털며 기상을 스쳐 지나갔다.
이끌리듯 꼼짝없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게 기상의 가슴을 후볐다.
가볍게 스친 그녀의 모습이였지만 경애의 호출을 받고 습관적으로 경애의 몸을 탐미하면서도 그녀를 그려보았던 기상이였다.
그로부터 몇해가 지나 신입 기자 축하파티에 잠깐 얼굴을 내밀러 ‘산타페’에 들렸을때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빨간 립스틱을 어색하게 바른 그녀가 딴 사람인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은 단발머리에 파리한 인상은 금방 그녀임을 알게 했다.
중학교때 임시 담임를 맡아 주었던 여 교생 선생을 짝사랑 삼았던 그 두근 거림이랄까.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경제부 시사 칼럼을 보조하게된 그녀는 어려운 시사용어를 외우니라 늘 옆에 책을 들고 다니며 묵묵히 일만하는 스타일이였다.
같은 경제부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좀처럼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었다.
늘 취재차 외근 나가는 기상과 마주치기란 아침.저녁 잠깐 부서 회의 석상에서 뿐이였다.
삼십 중반을 넘어 버린 기상과는 달리 이십대의 그녀의 풋풋함이 왠지 기상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요즘 당신 연애하나봐!’
한바탕의 경애와의 의미없는 육체를 탐닉하고 힘빠진 자라목처럼 지친듯 배개에 얼굴을 묻고 있을때 경애는 긴 담배연기를 품으며 자조적으로 물었다.
대학 써클에서 만난 경애와 특별히 불꽃 튀긴 연애감정으로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강요없는 만남을 지속하며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긴세월을 함께 했다.
대학동기들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때가 되면 결혼할 사이라 단정지어 놓고 적당한 때에 청첩장을 보낼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경애나 기상은 남의 시선은 염두하지 않은 체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경애에게 기상만이 있는것도 아니였고 기상또한 경애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지도 안았다.
다만 둘은 서로를 조금더 잘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해하며 적당히 인생을 즐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당신 눈빛이 보기 드물게 반짝거려.’
더이상 기상에게 긴물음을 뒤로한체 짧은 자기 감정을 들춰낸 경애는 늘 그랬던 것처럼 욕정을 지우려고 하는 사람처럼 먼저 샤워를 끝내고,
‘먼저 갈께. 오후 강의가 있어.’
짧은 입맞춤을 대신하며 촘촘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기상은 경애가 스치고간 강한 비누냄새를 느끼며 갑자기 수하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지 기상보다 젊다는 느낌의 그녀만은 아니였다.
알수 없는 묘한 감정에 이끌리는 그녀에게서 기상은 자기와의 또다른 세계를 탐미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죽은듯 쳐져있던 아랫도리가 빳빳해짐이 느껴졌다.
기상은 지긋이 눈을 감으며 사타구니로 손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구슬뿌리를 손으로 감싸며 수하의 모습을 그렸다.
또렷이 그려지는 그녀의 얼굴.
기상은 가쁜 숨을 조절하며 수하의 모습에 수음을 즐겼다.
목까지 터져오는 더운 열기가 가실때쯤 수하는 꼭다문 입을 조금씩 열며 기상을 받아줬다.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모텔을 벗어나 마감시간을 맞추려 서둘러 신문사에 들어서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수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기상의 출현에 가벼운 목례를 하는 수하는 늘 그러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엘리베이트 버튼만 바라보고 있었다.
멈춰선 엘리베이터에 발을 옮기며,
‘칼럼은 잘되가나?’
수하에게 던진 기상의 첫마디였다.
‘노력하고 있어요.’
수하는 차분한 목소리로 의례적인 대답을 한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이상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월요일 조회가 끝날때쯤 김국장은 수하를 불러 피부 물가를 조사하라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위해 기상과 동행할 것을 종용했다.
기상은 생각지 않은 수하와의 동행에 가슴이 뛰었다.
수하를 태우고 기상은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조심스럽게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저와 초면 아니시죠?’
뜻밖의 수하의 질문에 기상은 당황하며,
‘기억하고 있군.
그래 수하가 다니던 대학강단 뒷편에서 처음 봤었지.‘
기상을 기억한다는거 그녀에게 막연히 떠오른 영상의 한 조각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각인 될만큼 조금은 특별한 감정일까?
기상은 궁금해졌다.
‘반가웠어요.
어렴풋이 기사수첩을 손에 쥐고 있어서 기자일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와 함께 일하게 될줄은 생각지 못했거든요.‘
분명 수하에게 스쳐 지나간 여러 사람중에 한사람은 아닌듯 싶었다.
수하는 준비해간 노트에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며 노량진 수산시장을 꼼꼼이 다 돌고 날때까지 입을 다문체 맡은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었다.
수하의 요청에 늦은 점심을 먹고 가락동 시장으로 향했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며 수하를 건네다 봤다.
‘강기자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나?’
수하는 부지런히 펜을 굴리던 손을 놓고 기상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말을 아끼죠.
하지만 전 생각이 많아서 말을 아끼진 않아요.
사람들은 말이 없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품던데 혹시 송기자님도 그런 호기심인가요?‘
갑작스런 수하의 질문에 기상은 멍해진 기분이였다.
‘글쎄....,, 호기심보단 관심이겠지.’
궁색한 변명같았지만 그녀에게 단순히 호기심만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녀는 멈췄던 하던일을 계속하며 기상과의 대화를 기피했다.
말없이 가락시장에 도착했을때는 퇴근시간이 가까워짐을 알리듯 도로는 차츰 체증을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수하를 찾았을때 수하는 상인과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노트에 뭔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수하는 기상을 쳐다보며,
‘홍기자님 해삼좋아해요?’
기상은 말없이 활어코너에서 해삼과 멍게 그리고 팔딱팔딱 날뛰는 우럭한마리를 부탁하고 자리를 잡았다.
뒤따라온 수하는 옆자리에 앉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강기자 소주한잔 어때?’
수하는 대답대신 좋다는 재스처를 보냈다.
기상이 몸집이 제법있는 서글서글한 아줌마에게 소주를 주문하자 잽싼 손놀림으로 떠온 횟감이 먹기좋게 차려졌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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