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결의속삭임
|
- 본 게시물을 무단 다운로드, 도용, 인용, 링크 금지.
|
HOME >커뮤니티 >물결의속삭임 |
 |
|
 |
|
|
|
|
|
조회 : 271
/ 추천 : 0
|
  |
|
이른 아침 시내 시장통에 있는 궁민장 여관 4층 내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금테안경, 그 안경넘어 눈매가 범상치 않은 영감님이 값나가 보이는
번쩍이는 12자 자개장농앞 방석에 앉아 장부를 펼쳐 놓고 있다.
‘신부자!’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신영묵’은 도민증의 이름이다.
너댓개 있는 은행의 지점장들이 한달에 한번은 꼭 찾아와 선물을 놓고 갔고
어지간한 은행업무는 집에서 전화를 하면 직원이 달려올 정도의 큰손이다..
애지중지 기른 두딸 서울로 시집 보내고 늘그막히 상처하여 홀애비 신새가 되었으나
여기저기 땅이며 전,답 다 팔아 은행에 넣어 두었고 여관 사층 내실만 남기고 세를 주고도
한없는 욕심에 사채에 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편히 살 때도 되었건만...
그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정력가였던 신부자는 가끔씩 4층 내실에 여자를 부르기도 했다.
젊은시절 정부 요직에서 자금을 담당 했던 연유로 이재에 밝고 계산이 빨랐고
정보도 빨라 부동산으로도 상당한 부의 축적을 했다.
저녁이면 저 건너편 산아래 있는 유료 낚시터에서 소일 하는 영감님이다.
그 양어장 역시 신부자에게 변통하여 개업한 연유로 잘 모셔야 한다.
자리 잘못 드려 몇마리 못잡고 돌아 갈때면 그 주인은 자라목이 되었고
신부자는 헛기침만 두어번 하고는 눈길한번 안주고 휭하니 돌아 갔다.
신부자가 돌아간뒤 그 양어장 주인은 침 두어번 퉤퉤 뱉어 대를 닦아 접어 두어야 했고
그날 저녁 좋은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고기가 잘 잡히는 곳으로
들리는 소문에는 몇개 있는 은행 마다 이삼십억씩 들어 있다는 신부자앞에
우리의 착한 순딩이 정수가 어깨를 움추리고 앉아 있다.
“어르신! 지난번것 한달만 더 연기해 주십시오. 여기 이자 갖고 왔습니다”
“그리고 한장 더 부탁 드리러 왔습니다” “으음 자네 어른 이서는 해 왔는가?” “예!”
“자네 요즘 소문이 안 좋와! 힘든가?”
“아닙니다! 공장 증설을 하려고 자금 준비중입니다”
“으음! 그렇구먼! 그래 알겠네. 자네 어르신 건강하신가?
“예! 감사 합니다 어르신 또 찾아 뵙겠습니다”
내실 문을 나선 정수는 가슴을 쓸어 내린다.
신부자에게 맡긴 다망산업 어음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액수만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정수 장인어른 이서가 되어 있다.
정수 장인 어른도 그 시골에서 꽤 알려진 부자였다. 아들셋 잘못 키운 탓에
이제 달랑 하나 남은 3층 건물의 세수입으로 살고 계시지만.
신부자도 그 장인어른을 믿고 마음 터억 놓고 빌려 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정수가 이자를 안갖고 오거나 불안한 소문이 들리면
곧 바로 어음발행 은행 직원 불러 날짜 적어 보내고는 전화 한통 하면 그만이다.
“이보게 서사장 그 어음 내일 날짜로 집어 넣었네!” 딸까닥! , 죽는거다.
그 와중에도 레미콘 가격은 계속 떨어 졌고 신설한 공장 하나는 벌써 문을 닫았다.
대전, 청주, 음성, 충주 등등 주로 아파트 공사가 많았던 지방의 레미콘 공장들이
고생을 하고 많이 쓰러 졌다.
미분양 사태가 속출 하였고 충북 어음부도율이 전국 일위의 영광을 누릴때다.
정수가 납품하던 청주와 대전에 본사를 두었던 큼직한 업체 두개가 파산 했었다.
덕분에 정수도 무척 힘든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생산을 안할수도 없고 납품 하기는 불안하고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고 죽을 맛이다.
그누미 월급날은 왜 그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몇밤 자고나면 벌써 웅성거린다.
진퇴양난이다.
밀린 할부금은 물론이요
직원들 월급을 두달 짜리 어음 한장으로 주어 나누어 갖게 하고, 몇개월 밀려 벌건 도장 찍힌
최고장이 날라오는 지방세와 이런저런 보험료를 어음으로 납부 했다면 믿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게다.
중천에 뜬 태양의 뜨거운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늘어지게 자고 있는
행삼의 콧잔등과 이마에 땀방울을 맺힐즘 뒤척이던 행삼이 비틀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앉았다.
비닐봉투 꽁꽁 묶어 옹달샘에 담궈 둔 옥수수와 감자를 몇개 꺼내 들고 자리로 와서.
점심겸 저녁으로 요기를 하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가 조금 남은 쉰 떡밥 멀리 던져 버리고
가방열어 새떡밥 꺼내 반쯤 다시 게고 걷어 두었던 낚시를 다시 펴고 콩알만 하게 떡밥 달아
던져 놓았다. 손잡이가 뜨겁다. 잠시후 촐랑거리는 입질에 피라미 댓마리 건져 내고는
귀찮아 접어 두고 휴지 둘둘 말아 쥐고 뒷산으로 올라 간다.
여기 저기 다니며 철늦은 산딸기도 따 먹으며 운동한다고 뒷산 꼭대기 까지 올라가
멀리 보이는 시내를 바라 본다.
높은 건물 머리를 보며 헤아려 본다. 저기가 내 사무실 있던 곳이고 저기가 매일 다방일테고
저기가 아방궁 건물이고 저기가 역전이고 저기가 항주방석집이지...
그리고 저 산뒤에는... 정수 공장이 있는곳이다.
손전화는 이미 불통 된지 한참 되었고 정수에게 전화를 하려면 30분은 걸어서
동네회관앞에 공중전화로 가야 한다. 관두자 무슨 면목으로 전화를...
터벅 터벅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짜증 나도록 뜨겁던 태양은 앞산 산머리에 걸렸다. 잠시 후면 넘어 가리라.
할아버지가 손주녀석들과 함께 오셨다.
“자네 아직 있을줄 알았네. 저녁은 먹었나 모르겠구먼!”
부시럭 거리며 대바구니를 열어 알미늄 호일로 싼것을 건네 주신다. 김밥이다.
갖고 오신 시골안주거리와 소주 두병이 비워질때 까지 이것 저것을 물어 보시고
답해 드리고 여쭈어도 보고 하며 얼핏 보면 마치 부자간이 앉아 있는듯 정겨웁다..
할아버지나 행삼이나 모처럼 잔잔한 세상살이 얘기를 하는중이다.
해 떨어지기 전 쑥뜯어 불피운 모기불 연기가 사그러 들때쯤 두어줌 더 얹어 놓고.
슬슬 낚시 해 보자시는 할아버지 말씀에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삐리리리~~~ 점심을 먹고 소파에 무겁게 앉은 정수 앞 테이블 전화기가 울린다.
“사장님 웬 여자분이신데용” “돌려 봐!”
“오빠 나야!” “누구....신지?”“나야 오빠! 경아야!” “경아?...... 사택에 살던 경아?”
“맞어 오빠! 나야! 장가 가더니 목소리도 잊어 버렸나 봐?”
“그래 정말 오랜만이구나 어떻게 여기를 알았니? 지금 어디니?”
군 입대전 정수가 주경야독하던 산골짝 공장 사택에, 겨우 높은양반 한두명만 자가용이 있던 시절
어느날 부터인가 사택을 들어 오려면 통과해야 하는 정문에 서울번호판 단 까맣고 퍼억 퍼진 차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방문기록일지 방문처에는 ‘서 대복 반장댁’이라 적혀 진다.
아들하나 딸둘 학교 보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넉넉치 못한 살림이었던 영선반 서대복반장댁에.
우물방송을 통해 웅성웅성 시샘 섞인 소문이 퍼진다.
‘경아네가 돈 벼락 맞았다’ ‘이민간 친척한테 빛대신 받은 땅이 금싸라기가 되었단다’
‘곧 서울로 이사 간단다’
오래전 사업을 하던 친척에게 돈을 빌려 주었었고 그 친척이 파산을 하고 이민 가기전 빛잔치를 했는데
서 대복씨는 사천평 가량의 똥지게 퍼다 붓던 쓸모 없는 호박밭을 받았다
시세로 치면 빌려준 돈의 반의반도 않되는 땅이었다 한다.
쥐구멍에도 빛들날 있다 했던가 그땅의 주소지가 강남 하고도 잠실에 있었다. 그것도 한복판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땅 팔라고 침을 흘리며 떡방업자들이 물주와 함께 내려 오는것이다.
땅이 거기 있었는지 조차 잊고 살았던 서반장은 어안이 벙벙 했다. 그누미 똥밭을 이렇게 큰돈을 준다니.
놀란 가슴 진정하느라 그랬을까 묵묵부답으로 버티길 1년여만에 졸부가 된다. 졸지에 부자.
밤늦도록 불켜진 정수 방 창문틈으로 곱게 접은 경아 편지가 떨어 진다.
‘오빠 과수원에서 기다릴께’ 그리곤 도망치듯 뛰어 가는 발소리.
“인석아 공부 해라 너도 이제 고3인데 열심히 해야지”
“공부 하면 뭘해 대학도 못갈텐데”“인석아 너만 열심히 하면 아버님이 보내 주실테지”
“우리 아빤 아들 밖에 몰라 정말 속상해!”
이러쿵 저러쿵 경아와 정수가 연애 한다는 소문이 사택에 좌악 퍼질 무렵 졸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이 다가기 전 서울로 아사를 갔다.
“오빠! 편지 할께 그리고 전화 할께 잘 있어 오빠”
경아는 못내 아쉬워 그렇게 울면서 떠나 갔다.
|
|
* 가끔 광고를 클릭해 봐 주시면 낚랑 사이트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
|
|
|
|
|
|
|
|
|
|
|
|
|
|
|
알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