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버스를 타고 가다 꽃집 앞 길가에
노란 국화 화분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화들은 저마다 밝은 얼굴을 하고서
길가 쪽을 향해 앉아 있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아버지는 노란 국화 화분을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자주빛 소국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노란 국화였습니다.
아버지가 사오신 국화는 가을 내내
우리 집에서 햇빛이 잘 비추고,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져,
아침마다 아버지가 주시는 물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찬 서리 맞으며, 꽃과 잎이 떨어지고 나면
별다른 생각없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국화를 사오신 아버지는
해마다 마음이 아프셨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서른에 결혼을 하셔서,
첫 딸을 낳으셨습니다.
벌써 큰 아들에게서 손녀만 네 명을 보신 할머니는
작은 아들까지 딸을 낳자,
앓아 누우실 정도로 못마땅해 하셨답니다.
그런데도 작은 아들이 그 딸을 어찌나 끔찍이 여기는 지,
할머니는 바라던 손주가 아니라고 싫은 소리,
싫은 내색 한번을 못하였답니다.
아래로 동생 셋을 더 보았지만,
아버지의 딸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때로 엄마가 못마땅해 할 정도로
아버지는 딸에게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당신의 갈 길을 아셨는 지,
딸의 결혼을 서두르셨던 아버지는
너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가는 일이
자랑스럽다 하셨습니다.
웨딩마치에 맞추어 예식장을 들어 설 때
아버지는 잠깐 흔들리셨고,
딸은 아버지가 쓰러질까봐 손을 꼬옥 잡아드렸습니다.
이런 부녀의 움직임으로 순간 식장은 조용해지고
모두들 신부가 신랑에게 잘 가는 지를
눈으로 지켜주었습니다.
결혼한 지 채 일 년이 안 되어
아버지는 오랜 지병 악화로 돌아가셨습니다.
스물일곱해를 품에서 키워 출가시켜 주신 아버지를
딸은 일 년여동안만 못잊어 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사람 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것을 대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지어주신 울보라는 별명답게,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도 옆사람이나 마주앉은 사람들이
눈치 챌 만큼 눈물을 찍어내곤 했습니다.
지금도 유독 흰머리를 많이 가진 사람
(나이보다 일찍 머리가 세셨음.)
아버지를 닮은 사람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올 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다섯 해가 됩니다.
그동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저는,
출가외인이고 사는 데 바쁘다고
일년에 한 두번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올 휴가때 잠시 들려 잡초 뽑고,
큰 놈, 작은놈에게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를 설명해 주고,
절 시키고, 노래 부르게 하고, 술 따르게 하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돌아올 땐 "외할아버지, 안녕" 하더군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합니다.
노란 국화가 말해주듯 가을이 성큼 다가오나 봅니다.
짧은 가을이 가기 전에
살아 생전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노란 국화 두 개를 사 들고 아버지 산소에 가렵니다.
누워 계신 아버지가 잘 보실 수 있는
양지 바른 곳에 심을 껍니다.
아버지 떠나신 지 다섯해가 되서야,
아버지의 가을 맞이를 기억해 낸
딸의 죄송스런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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