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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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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釣想曲<산으로 간 낚시대-세번째>
잉어낚시는 장비가 만만치 않다.
가짓수가 많기도 하려니와 하나하나가 전부 유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엇하나 빼놓을 수도 없다.
파로호나, 낙동강, 금강 등지로 장박낚시를 가는 사람들을
보면 왠만한 이삿짐을 방불한다. 거기다가 포인트로 이동
하기 위해서 고무모트까지 대동한다면 1톤 트럭을
한차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수십대의 릴래에 그 만큼의 릴뭉치, 쌀 한가마를 넣을 만한
살림망에, 잡다한 도구상자, 빨랫줄 한마퀴, 잉어미끼(옥수수,
콩가루, 병아리사료, 천궁, 밀가루, 감자, 황토, 과일(?), 깻묵
기타 등등......) 식량, 취사도구, 텐트, 랜턴, 뜰채 등등
항목으로 적자면 종이 한장이 빽빽하다.
현철은 최소한의 짐만을 꾸려서 가방에 챙겨
왔는데도 낚시가방을 제외하고도 큰 가방으로
두 개는 되었다.
커다란 낚시가방은 등에 둘러매고, 남은 가방 둘을 양손에
나눠 들고, 밑밥을 비빌 때 사용하는 고무통은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나서야 모든 채비를 휴대할 수 있었다.
늘상 그렇지만 수십키로는 나갈법한 짐들이
별로 무겁지가 않다. 원래 포인트로 이동할 때는 낚시대를
한시라도 빨리 담글 욕심으로 제 아무리 무거운 짐도
가뿐한 법이다.
꾼이면 알지......그때의 넘치는 힘을......................
저수지로 난 풀숲 오솔길을 비칠비칠 헤집으며
물가로 내려갈 때였다.
현철이 주차해둔 뚝방에 일단의 차량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멈춰섰다.
봉고차 한대, 포토트럭 한대
드드륵.... 봉고차 옆굴탱이가 벌어지자 청년 몇이 미끄러져
내린다.
필경 낚시꾼일 것이다.
제기랄 까딱하면 자리하나 또 뺏기겠군!!!
현철은 그나마 영감님이 일러주신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발길을 재촉했다.
유격훈련을 받는 기분으로 바위를 타넘자
영감님은 아까 그모습 그대로 수면만 응시하신다.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오른쪽 귀퉁이를 막 돌아가니
적당한 평지가 보였다.
우루루..................
피난민 보따리 같은 짐을 내려놓았다.
가방을 벌려 릴대를 하나하나 꺼내서 릴뭉치와 결합
시키는데 자꾸 손이 파르르 떨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벌써부터 밀려든다.
조금전에 영감님께 맞겨놓은 텐트와 물통을 가져다가
잠자리도 마련하고 저녁밥도 지어야 겠기에
영감님이 계신곳으로 되돌아 갔는데......
지리산 포수......??
가관이다.
다섯명의 20대 청년이 릴대는 방울까지 채워
처억하니 어깨에 둘러매고
한놈은 맥주 한 박스를 등에 업었다.
"영감! 고기 잡았소?"
대뜸 말을 내불치는 젊은놈 입술사이로 오징어 다리가
삐져 나와 있다.
"............."
"워따!... 솔찬허시!! 여기좀 봐라! 넥타이가 안딸려 오네"
"클클!!! 잉어가 많기는 많은갑다.
오오옷! 사진한장 박아라 마"
무리중의 한 녀석이 돌맹이에 묶어놓은 넥타이줄을
별 폼을 다 잡으며 이리 땡기고 저리 땡기고 있다.
"야! 여그가 잉어 많은게. 여그서 하자!!"
"영감 물레방아 3개만 걷어주슈... 자리 다 차지허지 말고"
"................"
한 녀석이 연신 양손질로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기실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영감님이 채워놓은 넥타이 끝에 혹여 공리지의 여왕이
걸려있으면 어쩌나.... 못내 궁굼하기도 했다. 차마 용기를
내어 확인하지 못했을 뿐......
다행스럽게도 물살을 가르며 딸려오는 잉어들은 모두
두자쯤 되어 보였다.
점잖치 못한 청년 사이에 끼어들어 어른 앞에서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니냐고 한 마디 거드는 것이
도리인 줄은 알지만, 저렇게 형편없이 막가는
젊은이들한테 딱히 용기를 내어 뭐라 할 처지는
못되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얼마간 서 있다가 주섬주섬
물통과 텐트를 챙긴 후 행여 그놈들이 말이라도 붙힐새라
피하듯이 현철의 자리로 돌아왔다.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편에서 끊이지 않고
소음이 밀려온다.
달그닥거리는 소리, 첨벙거리는 소리, 줄이 터져서 투덜거리는
소리, 안주를 찾는 소리, 술권하는 소리, 게다가 노래소리까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영감님이 앉은 바로 그 옆에 눌러앉은 모양이다.
초장부터 호젓한 분위기의 낚시는 물건너 간 듯하다.
오늘밤은 별 기대없이 그저 밑밥이나 꾸준히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다보니 시장기가 밀려온다.
밥을 지을까?
아니다.
떡밥부터 만들기로 한다.
현철이 여기 온 제일 목표가 무엇이던가? 시장기 정도는
한두시간 참을 수 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통감자 미끼를 빼고, 대부분의 잉어밥은
여러 가지 곡물 재료를 적당한 점도로 배합하여 쓴다.
현철은 그간 연마한 그만의 비법으로 푸짐한 잉어밥을
지었다.
원칙을 세우고
순서에 입각해서
추호도 소홀함이 없이
걸게 한상을 차린다.
먼저 고무통에 1/4에 물을 채운다.
(고무통에 물을 먼저 채우는 까닭은 많은 양의 떡밥을 갤 때
마른가루에 물을 부어 개게 되면 고운입자의 떡밥이 밑으로
가라앉아서 일정한 점도를 유지하는 양질의 떡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병아리사료 두되, 믹서로 갈은 고운 옥수수가루 한되,
굵은 모래 굵기로 갈은 보리와 옥수수 한되, 깻묵 한봉,
콩가루 한되, 밀가루 약간, 박카스 병에 담아온 참기름 반병을 순서대로 원을 그리며 솔솔 뿌린다.
떡밥이 충분히 물을 흡수하는 동안
릴꽂이를 꼽고, 텐트를 치고, 씻어온 쌀로 밥을 지었다.
이제 떡밥을 마무리 할 시간이다.
배 하나를 척 꺼내어 강판에 사각사각 갈아서 떡밥에 끼얹고,
코펠에 깨지지 않게 담아온 썩은달걀(아! 아랫목에서
이놈을 썩히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5개를 풀었다.
고리탑탑고소달짝지근한 냄새가 확 풍겨온다.
흔히들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나야만
좋은 밑밥이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잉어가 활발하게 반응하는 먹이는 오히려 사람에게는
별반 후각적 자극을 못하던가 역겨울 수도 있다.
전국 팔도의 잉어꾼들의 비기(秘技)를 모조리 짬봉하여
거나한 떡밥이 현철의 손에서 거의 완성될 참이다.
영감님과 일단의 청년들이 애매한 동거(?)를 하고 있는
좌측 포인트가 술렁술렁 시끄럽다.
그러나 말겠지.....
잠잠해지를 바랬는데 한 30분이 지나도록
그칠 줄을 모른다.
막 두번째 묽은 밑밥을 투척했을 때, 술렁이는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들여다 보아야할 것 같다.
끙...... 이리도 힘이 드는가?
상황은 생각보다 안좋았다.
저녁부터 젊은이들의 행동에 그저 묵묵부답이었던 영감님이
추상같은 불호령을 토해낸다.
"네 이놈들"
"니놈들 만한 손자를 키운다!! 이누무 자식들"
"우리집에도 영감만한 아부지를 키운당께!! 딸꾹!!"
술에 취한 한 녀석이 배실 웃으며 대꾸를 한다.
순간 영감님은 눈에 불똥을 튀기면서 발밑의 쏠채를
집어들었다.
현철이 어떻게 말렸는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도
모를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청년들과 영감님 사이에 싸움아닌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더럽고 치사허네. 영감탱이 잘묵고 잘살아라"
끝까지 불손함을 드러내며 청년들은 짐을 챙겨 떠나갔다.
마지막놈은 일부러 영감님의 물레방아 하나를 툭
발로 차버린다.
청년들이 떠난 자리.
어지럽게 쓰레기가 널부러진 땅바닥을 보면서
영감님이 나즉히 한마디 하신다.
"모가지만 짤록하면 사람이간디? 자라도 돼야지도
모가지는 짤룩하제! 호로 상놈의 쌔끼들!"
같은 젊은 세대로서 몸둘 데가 없다.
"영감님 이제 화푸시고요"
"많이 잡으세요"
"저도 건너가서 낚시할께요"
"..........................."
현철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구석이 마냥 무겁다.
낚시터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본만 서로 지켜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을 저마다 자기 생각들만 하니.....
몇순배 밑밥을 치는데, 현철의 복잡한 마음같이
세번에 두번은 채비가 바닥에 걸린다.
또 걸린채비를 교체하느라 랜턴을 비추었는데
물 가로 흐린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화들짝 놀랐다.
언제 오셨는지 영감님이 현철의 뒤에 서 계셨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갈라네..... 내 자리에서 하소"
"3일 전에 허벅지만한 놈을 걸었는디, 끄집어 내지는
못했구먼......"
"ㅎ.. 헉....."
그리곤 시커먼 것을 내미신다. 프라스틱 계란판 같다.
"밑걸림이 심해서 바늘을 싸야 쓸 것이네......"
"적당히 오려서 봉돌 밑에다 달아매믄 되야......"
"재미보소......."
"아, 예 가시계요! 아이쿠!! 감사합니다."
영감님은 기분이 많이 상하셨는지 청년들이 떠나간 직후부터
짐을 꾸리신 모양이다.
시끌벅적 소란 가운데서
두어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또 영감님이 양보해준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공리지에서의 첫째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분명 그랬다.
그렇게 저물어가고 내일 새기분으로 낚시에 임할
생각이었다.
초저녁 내내 시끌씨글 난리를 치고 여기저기서
첨벙거렸으니 입질을 바랄것도 없지 않은가!
영감님도 안계시고, 청년들도 떠나버려서 현철 혼자만
남아 있는 공리지에서 바쁠 것 없이 마지막 남은 2대의
릴대를 옮기려고 막 왼쪽 모서리에 접어 들었을 때였다.
철푸.. 펄썩.... 처부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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