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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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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매봉산자락 작은 개울가
태백산맥 뾰족한 산아래 작은 마을엔 색바랜 초가지붕을 덮어쓴 집이 몇채 보인다.
한참 큰 옥수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곳에 고추잠자리 어울려 날고 있고
저쪽 뚝위에는 말뚝 박아 줄에 매인 에미소가 송아지와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전쟁때 설치 했음직한 전기줄에 매달린 이름모를 포탄이 군데 군데 보이기도 하고
비닐로 야무지게 갈무리한 벌건 글씨 적힌 신분증도 가끔 보이고
삐죽 나온 쇠통 모서리를 땅을 헤쳐 꺼내 보면 시골집에서 잡동사니 통으로 쓰기 좋은
탄통도 나왔다. 녹슨 총알이 가득 들은체로.
사진에서 봤음직한 녹슬어 구멍 뚫린 철모에 들꽃이 피어 있기도 하다
개울가 높은 미류나무엔 한여름 뜨거움에 말매미 소리 요란 하다.
작은 몸매에 얼굴이 예쁘신 엄마가 옆집 아줌마들과 함께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계신다.
정수와 정호는 윗도리 벗어 제치고 작은 대바구니로 고기를 잡느라 마냥 즐겁다.
초등학교 2년 정수와 6살 난 정호는 단 둘 밖에 없는 형제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청주 외갓집에서 학교 다니는 정수가 내려 왔다.
‘언니야 일루와 여기 고기 많어’‘그래 갈께’
정호는 처음 만난 언니가 그렇게 좋을수 없다.
옆집 자매들 틈에 끼어 놀던 버릇에 정호는 형인 정수를 그렇게 불렀다.
‘엄마 우리 언니는 언제와?’‘이제 열밤만 자면 온단다’
그렇게 열밤이 열번쯤은 지났을 무렵 한여름 방학때 외삼촌과 함께 언니가 왔다.
외삼촌은 하룻밤 자고 청주로 돌아 가셨고.
처음 만난 언니가 얼마나 좋던지, ‘이 사진이 네 언니란다’엄마가 궤짝을 열어 꺼내어 보여 주신
들마루에 기어다니던 아기적 언니의 사진을 보고 자주 꿈속에서 만나기도 했다.
가끔 함께 놀다 옆집 언니에게 꼬집히고 서럽게 울며 엄마를 부르며 돌아 왔던 나는
이제 무서울것 없이 든든 하다. 그만큼 언니는 나이보다 덩치도 컷고 잘 생겼다.
‘언니야 고기 많이 잡아서 경아언니 약 올리자’ ‘그럴까? 그러자’
둘이는 돌을 들추며 풀섶을 밟으며 대바구니 한쪽 구텅이가 터질때 까지 고기를 잡았다.
작은 양동이를 들고 있는 나는 고기 많이 잡아 주는 언니가 마냥 자랑스럽다. 참 잘 생긴 내 언니...
엄마가 저만큼 보이는 개울가에 바구니와 고기든 양동이를 올려 놓고
둘이는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팔을 짚고 엎드려 발로 물장구를 치고 물싸움을 하고.
혹시나 하여 엄마는 두아들을 불러 댄다
‘깊은곳 가면 않되 이쪽으로 오거라!’ 우리는 듣는둥 마는둥 물놀이에 열중 했다
직업군인이신 아빠를 언니는 아버지라 불렀고 따라 부르려던 나는 어색 했다.
나는 아빠를 닮았고 언니는 엄마를 쏙 빼 닮았다. 외할머니, 이모와 비슷하게.
엄마 아빠와 늘 함께 살았던 나, 어려서부터 외갓집에서 자라고 학교 다니는 내 언니
둘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한여름 산골짝에서.
빨래가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엄마를 쫓아 두 형제는 신나게 걷는다
손을 잡고서 팔을 흔들며 그모습을 뒤돌아 보는 엄마의 두눈엔 사랑이 흐를다.
백열전구 불빛아래 들마루 밥상에 둘러 앉은 우리 식구들
한여름이긴 하나 산골인 탓에 선선하다 조금은 추운듯이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고 뜰앞 닭장에서 큰눔으로 한마리를 잡으셨다.
피를 빼야 고기가 맛있다는 아빠는 뒤로 꺾어 머리를 날개 속에 집어 넣은 목을 베어
피를 한사발쯤 받아 내고는 끓는 드럼통 잘라 만든 화덕에 큰 양은솥 얹어
장작불로 끓인 물에 잠깐 담구어 털을 뽑으셨다.
원체 무뚝뚝한 아빠가 닭다리 하나를 뜯어 언니에게 주셧고
남은 하나는 나를 주셨다.
언니 먹는 모습 그대로 따라 먹으며 반찬도 똑같이 따라 먹었다.
언니는 아빠를 무척 어색해 했다.
그날밤 언니는 아랫입술을 많이 다쳤다.
닭장 옆에 있는 화장실에 몇번을 들락 거리던 언니는
불꺼진 마루에 오르려다 헛 짚어 앞으로 넘어 지며 마루 모서리에 부딪혔다.
놀라 달려 나와 살펴본 엄마는 ‘이빨이 안다쳐 다행이구나’하시면서도
엄마의 두눈엔 눈물이 글썽 거리셨다.
앙다물고 아픔을 참는 언니의 모습에서 야릇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빨간약 바른 퉁퉁부은 언니의 입술 덕에 물가에 나가는건 금지령이 내렸고
언니와 나는 옆집 자매와 소꼽장난, 술래잡기 를 하다가
언니와 둘이 논뚝 밭뚝을 따라 뛰어도 다니고 언니가 잡아 주는 잠자리를
양쪽 손 손가락 사이 마다 끼워 놓고 소변을 보려면 언니가 바지 단추를 풀러 주었다.
옆에 앉아 풀러 주는 언니의 입술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날밤 언니 잠꼬대에 몇번을 깼다.
엄마를 안찾고 할머니를 찾는 언니가 조금은 이상 했다
풀숲에 숨겨진 새집을 찾아 새끼를 손에 올려 놀다가 도로 넣어 주기도 하며
방학 기간 내내 언니와 함께 지내며 아빠 엄마 보다 더 좋와졌다.
손등을 벌에 쏘였을때 된장을 발라주던 내 언니.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상채기 난 무릎에 빨간약 발라 주며 호호 불어주던 내 언니
무언가 모르게 아빠와 서먹 하던 내 언니
이제 낼 모래면 헤어 져야 한다. 언니의 개학일이 몇일 안남았단다.
‘엄마! 나 언니 따라 갈래!’ 땅바닥에 앉아 발버둥 치며 악을 쓰며 울고 있는데도
언니를 데리러 온 외삼촌과 언니를 실은 뻐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가 버렸고
엄마가 그렇게 슬피 우시는 모습을 그날 처음 보았다.
그후로 한동안 읍내 나가는 뻐스를 타려면 엄마는 나를 달래느라 무척 고생하셨다.
언니 한테 가자고 때 쓰는 나를 달래 시느라
그것도 몇번, 그럴때 마다 함께 눈물 흘리며 흐느끼시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럴수도 없었다.
내 언니, 엉아, 철든 뒤 형으로 불렀던 내 자랑스런 언니는 늘 내 마음속에
사랑과 그리움과 슬픔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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