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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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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전 늦은 겨울 호암갤러리에서 전시된 미술전람회 감상문 모집에 응모해떤 글입니다. 낚랑의 모든님과 특히 저를 아껴주시는 선.후배님과 지난 저의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 이글을 올립니다.^^;
小亭과 金剛山 展覽會를 보고
回龍顧祖
2월의 어느 한가한 休日 오후늦게 불편한 몸을 추스려, 올해 初等學校에 入學하는 딸의손을 잡고 아내와 함께 湖巖갤러리를 찾았다.
나의 오랜 病苦에도 불평 한마디없이 7년을 하루같이, 내 삶의 길목에서 賢母良妻의 의연한 모습으로, 오늘까지 切望으로부터 날 붙잡어준, 고마운 아내와 딸 우리 셋은 겨울裸木으로 조경된 湖巖아트홀의 뜰을 지나 小亭과 金剛山 展覽會場에 들어섰다.
小亭과 金剛山을 觀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겨 갈 수록 小亭 변관식 선생의 所産物(작품)이란 眞正 忍苦의 歲月과 刻苦勉勵 끝에 이뤄어낸 한 人間의 理想과 哲學의 形象化란 느낌이 왔다.
金剛山이라는 絶對的이고 世界的인 名山을 畵幅에 담아냄으로써 당신의 思想과 信仰마저도 자연스럽게 表現되었음을 감히 想像했다.
展覽會場 벽면에 쓰여지길 "金剛山의 아름다움과 莊嚴함은 내가 平生 그려도 다 못 그릴 그런 莊嚴美를 갖춘것이다. (중략) 金剛山의 한 部分을 그릴때마다 그곳의 산세는 물론 바위의 생김 생김과 물이 흐르는 方向과 물살의 세기 까지 記憶하며 그린다. 8년 海東第一山을 찾고 30여년간 그를 그렸으니 그와 나는 이제 不可分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위의 글에서 보듯이, 小亭선생은 해방전 8년간 金剛山을 찾아 金剛의 山中生活을 토대로 스케치한 것과 記憶에 依存하며 30여년간 名山 金剛을 그리면서 小亭 자신은 바위를 그릴 땐 一石이 되고, 소나무를 그릴땐 一松이 되며, 사람을 그릴땐 一人이 되어 그 對象을 畵幅에 담았으리라.
小亭선생의 金剛山 이곳 저곳에 登場하는 人物描寫는 精巧한 모습으로 表現되진 않았지만 그 山中의 客들의 모습에선 한가함과 서두름의 造化가 어느새 나 자신도 그 무리속의 한사람으로 錯覺하게끔 한다.
眞正한 自由人의 思索과 生活을 通해서만 可能했던 作業은 아니었는지! 世俗의 人間들이 所有하고 있는 어리석은 欲望과 사슬에 얽메인 모든 執着으로부터 벗어난, 自然의 품에서 숨쉬고 그 大自然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人物들의 描寫는 俗世에 젖어사는 우리들에게 新鮮한 衝擊이 아닐 수 없다.
展覽會場 前半部에 紹介된 山水畵와 그 山水畵에 쓰여진 詩 (李伯의 詩)는 선생의 無爲思想을 나타내려 함은 아니었는지? 小亭先生은 자신의 作品世界를 통해 道를 追求하셨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선생은 자신의 타고난 素質과 能力을 啓發하고 誠心으로 發展 昇華시키며 日常속에서 道를 追求하셨던 것 같다. 나의 이러한 느낌은 展覽會場의 년도별로 構成된 作品들의 順序를 머리속에 떠올리며 더욱 强하게 와 닿았다.
靑年期의 未熟한 듯, 鈍濁한 듯한 筆致...!
그후 30여년 뒤에 그린 小亭先生 全盛期의 힘찬 筆力은 金剛의 明氣가 轉移되는듯 했으며, 內金剛 報德屈과 內金剛 眞珠潭의 畵幅아래 서 있을때는 살아 숨쉬는 金剛의 莊嚴함에 난 茫然自失하여, 觀覽途中 展示品에 가까이 가서 놀다가 案內하는 언니로부터 注意를 들었던 딸아이의 손을 不知不識中 놓친체 멍하니 서서 名山 金剛의 氣運에 壓到 當한 듯 한동안 발걸음을 옮겨 놓을 수 없었다.
난 巫俗信仰인도 그 어떤 神秘主義者도 아닌 그저 平凡한 사람(病苦에 시달리지만)으로서 日常에서 벗어난 놀라운 經驗이었다. 곧 不惑의 나이를 맞이할 한 壯年으로서 ‘美術作品의 힘은 참으로 偉大한 것이구나’하는것을 1층 展覽會場 마지막 작품인 內金剛 報德屈과 內金剛 眞珠潭 앞에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一生의 努力이 한폭의 그림으로, 成就感으로 表出된 場面인 듯 했으며, 또 한편으론 선생의 筆力 과 筆歷을 한 몸에 느낄 수 있는 순간 이기도 하였다.
‘小亭선생은 자신의 作品世界를 通하여 自我成就를 하신 분이구나’하는 진한感動이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비로서 耳順의 나이에 그런(內金剛 報德屈과 內金剛 眞珠潭) 大業(大作)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느낌은 순수 美術的 次元의 感想을 뛰어넘은 3次元的 感動이었다. 나는 굳이 耳順의 앞에 ‘비로서’라는 語彙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精神世界가 主管하는 分野에서의 本質的 成就란 그 對象이 學問이건 藝術이건 間에 그에 적합한 代價가 必要한 것이고 그 代價란 忍苦의 歲月을 包含하여, 克己生活 의 産物 아니던가!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映畵 「서편제」에서, 得音을 위해 故意的으로 劇藥을 使用하여 장님을 만드는 場面을 記憶할 것이다.
그 뿐인가? 우리 民族의 얼이 담겨져있는 所重한 傳統文化 가운데는 한 人間의 또는 代를 이은 精神世界가 昇華된 結晶體를 종종 接하게된다.
그러한 犧牲마저 感受한 崇高한 文化가 民族文化 傳統文化를 繼承 發展 시켜온 源泉的 힘이 아닐까!
아 ! 참으로 極致의 境地란 人間에게 엄청난 代價를 要求하는가 보다 !
나는 展覽會場을 떠나면서 내 머리속에 宿題 처럼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靈山 金剛과 小亭은 不可分의 關係란...?’그리고 ‘美術에 門外漢인 내가 느낀 엄청난 感動의 實體는 무엇일까? 특히 內金剛 報德屈이란 大作 앞에서의 그 느낌을 한 人間의 自我成就로 結論 내리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몇날 며칠을 설레임과 궁금함으로 苦悶하다가, 3월의 첫째주 봄氣運이 제법 따스한 어느날 午後 다시 湖巖 갤러리를 찾았다.
무엇인가 알 듯도 한 그 느낌으로 막연하게 두번째로 찾은 그날 2層의 비디오 上映室에서 마침 <유홍준과 고은의 금강산답사기> 의 映像이 始作되고 있었다. 오랜 鬪病生活로 經濟的 活動도 中斷한 나는 한가한 마음으로 不便한 몸을 의자에 기댄체 스크린에 시선을 던져 놓고 있는데, 그 때 <萬物像이 보고파 雨天속에 며칠을 애 태우던 중 踏査 마지막 날, 고은詩人은 一行들의 山行中道 抛棄에 아랑곳 하지 않고 萬物像을 가슴에 담기 위하여 山行을 계속한다.>
그러나 <만물상을 보기위해 건너편 山 봉우리에 선 詩人 고은 선생은 더욱 초조해진다. 곧 서울로 出發하기 爲해 下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름에 가려진 만물상은 千年의 秘密을 간직이라도 하듯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다 못한 自然人 고은의 “금강~~~~~~~~~!” “만물상~~~~~~~~~!!”하는 외침, 아니 그건 아룀 이었다. 일찍이 小亭 선생이 金剛山과 자신을 일컬어 “그와 나”로 表現 했듯이 詩人 고은선생 또한 이미 金剛을 單純한 自然의 形象이 아닌 形而上學的인 對象으로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전혀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던 구름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하질 않은가!
아흐! 고은 詩人의 懇切한 念願에 話答이라도 하듯, 만물상들이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하고 보려는 듯, 구름에 감추었던 만물상의 秘景을 드러내던 그 장면! 그것은 말로 表現하기 어려운 壯觀이었다.
그리고 만물상을 향하여 禮를 올리는 詩人 고은의 모습은 더 以上 世俗의 人間이 아니었다. 바로 小亭의 畵幅에 있던 어느 두루마기 차림의 한 시골老人이었다.
내 健康만 許諾된다면 지금 당장 金剛山行 표를 求하련만 하는 부러움에 感嘆詞를 연발하고 있으려니, 순간 電光石火 처럼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무엇인가의 느낌.....!
나는 비디오 上映이 다 끝나기도 前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가 階段 바로 옆 홀에 있는 內金剛 報德屈앞에 다시 섰다. 報德屈위의 山을 다시 올려다 보니 그 山은 더 以上 그림속의 山이 아니었다. 그 山은 살아있는 龍과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의 先賢들은 山을 龍에 比喩했다던데, 저 報德屈위의 內金剛山 이야말로 巨大하고 無限한 힘을 보유한 龍 그 自體였다. 民族의 雄志가 담긴 山! 백두대간 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民族의 精氣가 담긴 그 모습이었다.
民族의 靈山 金剛, 살아 숨쉬는 金剛은 小亭 변관식이란 韓國 畵壇의 한 人間을 通해 自身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아니, 한 人間의 念願(金剛山을 表現하고자 半平生을 바친)에 和答이라도 하듯, 小亭의 맑은 靈魂엔 金剛의 正氣가, 붓을 들어 먹물을 찍어담은 한 팔엔 金剛의 힘이 실린 것은 아닌지?
이런 몇 가지의 不可思議한 質問들을 스스로 하며 이것이 <나의 지나친 飛躍일까?> 하는 自問에 나는 <飛躍만은 아닐꺼야!> 하는 自答으로 첫날 展覽會를 觀覽한 후 얻은 나의 숙제에 대한 答을 대신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쉽게 疲勞를 느끼는 肉身땜에 지쳐있었지만 마음은 童心의 숙제를 다한 樣 홀가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한편의 感想文을 써 내려가며 또 하나의 想念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우리나라 三千里 錦繡江山중 특히 金剛山은 사람의 말과 글로는 表現할 수 없을만큼 그 빼어난 容貌와 秀麗한 姿態로 歷史 以來 世界人의 부러움을 받아왔지만, 分斷 祖國의 아픈 現實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小亭과 金剛山展은 單純한 感動 異面에 안타까움, 希望과 勇氣의 메세지를 同時에 傳해 주는 듯 하다. 半平生을 넘게 日帝의 抑壓속에서 살아온 小亭 변관식 선생은 金剛山을 通해 우리 한민족의 雄志를 表現 했으리라 여겨진다.
아! 金剛山.
數 많은 離散家族.
굶주리는 北韓 民族들.
說往說來 統一에 대한 國論分裂들...
世界 初强國들과의 現案들...
韓半島 아름다운 우리江山의 統一이여!
統一의 그 날이 어서오길 기다리며....
1999.3.8
지금 窓밖엔 梨花의 꽃잎이
휘날리 듯
春雪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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