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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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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한치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보라속을
헤치며 다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다리 중간쯤 왔을까? 저 멀리에서 붉은 빛이 보였다.
저게 무얼까? 여인은 궁금하여 붉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향했다. 쌓인 눈은 허리께에 이를 정도다.
눈속을 헤치며 다가가자 붉고 탐스러운 장미 한송이가 눈속을
헤치며 피어난 것이다.
"세상에, 이 추운 겨울에 눈속에서 장미가 피어나다니...!"
여인은 장미를 꺽어서 품속에 품고 돌아오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그때부터 태기가 비치더니 아이를 낳았는데 계집아이일줄 알았는데
뜻밖에 사내아이였다.
모두들 어려웠던 시절을 넘기면서 그 아이는 성장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입대를 하여 군복무도 거의 마쳐가던 87년 6월경
당시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뜨거운 함성이 전국을 메아리
치고 6.10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은 열기를 더해 가던 그 시절
오랜만에 외출을 나왔다가 서울역에 운집한 수많은 군중들의 민주화
투쟁을 목격하고 동참하게 된다.
시위진압대의 무차별 발포와 시민들의 저항은 극에 달하고 어느덧
저녁무렵이 되자 시위대는 흩어져 산발적인 시위를 하였다.
그때였다.
갸날픈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백골단들에게 여러명의 여자들이 머리채를 붙잡힌채 끌려가고
있었다.
"저런 나쁜 놈들!" 지켜보던 시민들은 구하고 싶어도 백골단의
소문은 익히 아는지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시위를 하던 청년들이 수십명이 각목을 들고 백골단과 일대
난투극이 벌어지고 그 틈에 구경만 하던 시민들도 가세하여
붙들려가던 여자들을 대부분 구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의
여자를 구해서 부축을 하며 남대문시장쪽으로 향했다.
다리를 다쳤는지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또, 바지도 찢어지고 머리도 엉클어진채로...!
그렇게 남대문시장에 거의 다다를 무렵, 이번에는 형세가 역전되어
시위대들이 진압대에 쫓기게 되었다.
속으로는, " 아! 큰일이다. 군인의 신분으로 시위에 가담하였으니
이제 나는 끝장이다!"
그렇다고 어려움에 처한 여자를 팽개치고 혼자 도망갈 수도 없는일,
여자애에게 "빨리 뛰어요!"
그러나 다친 다리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한다.
할수없다! 자, 업혀요!
처음보는 남자인지라 주춤하는 것 같다.
다시 다그칠 수 밖에 없다.
"빨리 업히라니까요! 안그러면 둘 다 잡혀요"
그 사이 진압대는 더욱 가까워졌다.
여자애를 업고 상가쪽으로 딥다 뛰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오~~!"
급하니까 살려달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자, 어서 이리 들어와요!"
상가는 대부분 철시한 상태이지만 당시의 상인들은
한마음,한뜻으로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던 터라 호의적이었다.
내가 여자애를 업고 들어서자 곧바로 셔터를 내렸다.
"학생! 나를 따라와요(당시 나는 사복차림)"
안내해주는 상인을 따라가니 지하의 창고였다.
"학생들은 밖이 잠잠해 지기 전에는 절대 여기를 벗어나지
말아요! 조금 수상쩍다 싶으면 마구 잡아가니까...!"
내가 사복을 입고 있으니까 대학생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빵과 우유를 갖다주는 것이었다.
시위를 하고 긴장한 터라 빵과 우유로 요기를 하였다.
"너무 고마웠어! 어느 학교 다니니?"
이 기집애가 대뜸 반말이네. 내가 어려보이나 보다
"저 군인입니다!"
" 어머, 그래요! 군인인데 시위에 참가하고 그래도 돼요?"
" 당연히 안돼지요! 신성한 국방의무를 다하여야 할 군인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도 시위에 참가하셨잖아요?"
"제가 비록 군인이지만 국민들의 민주화요구는 정당한 것이라
생각하며 또 아가씨가 무지막지한 백골단에 끌려가는 걸 보니
남자로서 일단 구하고 보자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정말 고마워서 어쩌죠! 저는 당연히 저같은 학생인줄
알았는데 군인아저씨라니..."
"그렇지만 몇달 지나면 제대를 하게 되요!"
"어머, 그렇다면 더더욱 조심하셔야 할 분이 하마터면 저 때문에
큰일 날 뻔 했네요!"
이제 제법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녀의 모습이 한층더 가까이
눈앞에 들어온다.
"햐! 이쁘다. 갸름한 얼굴에 수정같은 눈동자, 오똑 선 콧날하며,
도톰하고 붉은 입술, 거기에다가 뽀얀 피부!"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나의 영혼이 그녀의 수정같은
눈동자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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