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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결의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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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이 낚시터에 앉아 있으면 모두 제 세상이다.
파란 호수속에 푸른 산그림자가 떠 있고 높은 하늘이랑 흰구름도 그속에 있다.
난생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오랜 친구처럼 반갑고 가끔 치솟는 찌에서 인생살이의 기쁨과 기회와 인내를 되새김하는 철학같은 것을 음미하기도 한다.
고기를 많이 잡으면 뭘하고 못 잡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저 낚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러면서 시공과 대화하고 사념속에서 살아가는 슬기와 의미를 캐보면 그만 아니냐는 얘기이다.
필자는 이래서 50년 넘게 낚시(질)에 미쳐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많이 점잖아졌다고 남들이 말하지만 한 십년전까지만 해도 꽤나 심통많고 짖꿎은 장난꾼이였다.
어느해 한여름날, 파로호 상유인 양구땅 공수리에서 낚시를 하였다.
점잖게 생긴 50대 중반의 신사가 아주 젊은 여자와 오더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했다. 밤낚시를 하려는지 낚시터 뒤에 터를 다듬고 천막을 쳤다. 천막앞에 깔개를 깔고 코펠 버너 등 취사도구를 차려놓았다.
그런데 머리가 희끗 희끗한 이 남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낚시의자에 앉은 채 시키기만 하는거다.
신경질이 나도록 잔소리까지 퍼부으면서...
여자의 옷은 온통 땀에 젖었다.
따거운 햇살에 익어 여자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불쌍한 노예처럼 보였다.
함께온 이사범(태권도 8단) 은 눈꼴사나웠던지 "형님 저 새끼는 도대체 뭐하는 X 인지 모르지만 해도 너무하는거 아니유?" 하고 흥분했다.
해는 어느덧 누엿 누엿 서산에 기울었다.
천막속에 들어가 뭘하고 나오는지 얼굴이 땀범벅이된 남자가 낚시를 시작했다.
잠시 후 여자도 나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날은 고기가 잘 낚였다.
내가 열마리 쯤 잡아내는 동안 그는 한마리도 못 잡고 헛채기만 했다.
"여봐! 당신 미끼를 뭘 쓰는거야?" 나에게 시비조로 물었다.
아랫것들에게 하는 말투였다. 나는 빙긋이 웃으면서 "네 지렁이 하고 떡밥을 짝밥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고 대꾸하였다. 여자가 "회장님도 지렁이를 써보세요" 라고 권하니까 "못잡으면 그만이지 쌍스럽고 더럽게 지렁이를 쓰란 말이야!" 하고 핀잔을 줬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천막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푸석푸석한 몰골로 나와 낚시를 하던 그가 갑자기 "여봐! 지렁이 좀 줘봐!" 하고 소리쳤다.
나는 또 참으며 나눠 줬다.
"여봐! 이거 꿈틀거리고 미끄러워서 바늘을 꿸수 없잖아 어떻게 꿰는거야!" 역시 반말투다. "그걸 손으로 꿰시면 됩니까? 지렁이 끝을 입술로 꼭 물고 슬며시 당기면서 바늘을 꿰 보세요 그래야 잘 꿰집니다"
나는 능청을 떨었다.
"아니 이 더러운 지렁이를 입에 물으라구?" 지렁이가 더럽긴 왜 더럽습니까 남자 양기에 제일 좋다는 토룡탕이 바로 지렁이탕인데요"
그는 담배개비만 한 지렁이 끝을 휴지로 닦아 인상을 쓰며 입술로 물고 바늘을 꿰어 던지고 침을 몇번씩 뱉었다.
한참 후에 그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여봐! 지렁이를 달았는데도 입질이 없잖아! 이우가 뭐야?"
"지렁이 끝을 이빨로 잘근 잘근 씹어서 쓰셔야죠 붕어도 연한 지렁이를 좋아합니다" 그는 우거지상을 하면서 지렁이를 씹었다. 그러자 연거푸 손바닥만한 붕어가 줄을 이어 낚였다.
"햐 그거 참 신통하구먼 붕어도 씹은 지렁이만 먹네..." 그는 지렁이를 갈아 끼울때마다 그야말로 정성들여 지렁이 끝을 씹어서 던지곤 하였다.
지금도 그 양반이 내가 시킨대로 지렁이를 입술로 물어서 꿰고 씹어서 던지는지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시인 수필가 강원도예총회장 배 동욱)
daum낚시칼럼에서 옮겨 왔습니다. [ http://column.daum.net/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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