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결의속삭임
|
- 본 게시물을 무단 다운로드, 도용, 인용, 링크 금지.
|
HOME >커뮤니티 >물결의속삭임 |
 |
|
 |
|
아내의 향기
로마의 역사와 연인들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고 하였던가?
대지가 숙면에 들고 연인들의 밤이 하얗게 자지러 질 때
출근을 준비하는 남자가 있다
한시간의 시차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새벽 잠,
마지막 알람소리를 모두 체우고서야 잠을 깨었다
거실로 나가서 중간 방을 살며시 열어 본다
오늘도 역시 아내의 품을 차지하고 있는 저 남자,
내 아내이었기에 다시는 품지 말라며 수차례의 경고를 보냈음에도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서 밤마다 아내의 품을 찾아드는 저 남자는
소심한 나와는 달리 엄청 배짱이 두둑한 놈이다
속상한 기분을 털어내며 세면을 위해 화장실로 들어 간다
하루가 멀다 않고 벗어 던진 아이들과 내 옷가지로
난장판이 되었던 화장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여자들만의 쉽고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었던 걸까?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 갈 때마다 궁굼하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빨래는 빨래통에 넣으라며 수없이 되풀이하는 아내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난 늘 당당하게 빨래를 화장실 바닥에 내 팽개친다
난장판이 어찌 그것 뿐이랴.
한참 식욕이 왕성한 아이들은 세끼의 식사로는 모자랐는지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뭘 그렇게 만들어 먹는건지...
아이들이 점심과 간식으로 먹은 음식 찌꺼기와 빈 그릇들은
언제나 싱크대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가끔은 지나치다 싶어서 설거지를 해 줄려고도 하였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싱크대 위의 진풍경들,
치즈가 눌러 붙은 후라이팬이며,
스프 쪼가리며, 라면 봉투,고구마 껍질,
그리고 먹다가 버린 라면 줄기들...
손에 물을 대고 싶은 마음이 쑥 들어가 버린다
지쳐 버린 걸까?
아니면 포기해 버린 걸까?
퇴근후,현관 문을 들어서던 아내가 돼지 우리로 변해버린 집안 꼴을 보며
예전엔 종종 잔소리를 늘어 놓더니만 이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히 그려려니 하는 것인지도...
세면을 끝내고 머리를 손질한 다음 외출복을 꺼내 입고
아이들의 방과 아내가 잠든 방을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거지 같은 서방을 만나 힘들게 살아온 삶의 역경이
막내둥이를 품고 잠든 아내의 얼굴에 굵은 주름을 세기고 있었다
어느새 저렇게 늙어 버렸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19년을 살아오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오로지 일부종사(一夫從事)의 가시 밭길을 헤쳐온 여자였는데...
살며,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자책이
새벽길을 나서는 사내의 가슴을 무겁게 짖 누른다
투박한 손을 아내에 이마에 얹었다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남자였던가?
가끔 물결을 들여다 보며 어지럽게 넓린 인연의 인과를
묵묵한 미소로 위로하면서 따뜻한 찻잔을 건네주던 여자,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가슴으로 느끼는 믿음이 있었기에
부부를 일컬어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하였던 것이리라
누가 말했던가? 고귀한 것이 아내의 일생이라고...
가까이 소중한 것을 간과(看過)함이
천하에 둘도 없는 어리석음이라 하였지
벗들이여!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아내라는 향기가 있음으로 사내의 외적 활동이 자유로운 것과
낚시꾼의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불망(不忘)의 설레임이 있다는 것을...
밋밋하지만,깊은 배려와 따뜻한 정으로
평생을 품어 가는 은근한 사랑
그것이 바로 아내의 향기라는 것을,,,
|
|
|
|
|
|
|
|
|
|
|
|
|
|
|
|
|
알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