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램이었을까?
또 하나의 운명을 찾아 나서기 위하여 기집애와 작별을 나누었던 그날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를 기다렸던 것은...
눈이 날리고 있었다
추억에 몰입 되어 그대로 멈춰지기를 바랬던 虛無한 갈망속으로...
기억의 돌다리를 젖혀가는 회상 속으로...
언제였던가?
황혼에 둘린 탄금호에서 풀어 내던 세월의 덧
쇄뇌던 잠재를 끊어버리고자 여행을 다녀왔다
털털거리는 시내버스에 올라
결빙된 도로를 미끄러져 나가기를 두시간 여,
드넓게 펼쳐진 설원이 나타났다
얼어 붙은 강 표면을 뒤덮은 백설
한적한 산기슭에 쓸쓸하게 피었다가
가을 속으로 마중 없이 숨져간 들풀의 넋이
하얀 꽃가루로 날리고 있었다
길게 이어간 강줄기를 채우는 悲念의 알갱이들
무대 위,하얀 소복의 삐애로처럼
허물어 지지 않는 공황 속에서
세월의 미이라로
잊혀지리라
수선화를 좋아했던 기집애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에 오똑한 콧날의 아주 예쁜 기집아이였지요
십 수년 만에 찾은 기집애의 집,
뒷 뜰에서는 매화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었습니다
기집애가 없는 커다란 한옥은 스산하였습니다
허물어진 담벼락이며,
장독대 위로 소복하게 쌓인 눈덩이가
기집애가 살아온 삶의 단면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담 너머 산자락을 뒤덮은 백설이 눈에 시렵습니다
눈 위에 드러누우면 세월의 퇴적물을 씻어 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잃어버린 가슴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잠시 눈 속에 누워 기집애를 위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집애가 오랜 병상을 훌훌 털고 파아란 생기를 되 찾을 수 있기를,
봉오리 봉오리의 가여린 소망이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날
꽃보다 부신 기집애의 미소를 볼 수 있기를
. . .
갈등,미움,
후회와 분노로 얼룩진 삶의 과제로
유한한 내일을 쉽게 의식하지 못하였지
삶은 불완전한 함수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펼쳐 놓고 인과의 장벽을 세우기 보다는
하나씩의 매듭을 풀어 가며 나머지를 예비하리라
상처로 분노하는 가슴에는 용서를,
슬픔에 몸부림치는 자에게는 위로를,
실의에 절망하는 자에게는 기도를
. . .
열매 맺지 못한 낙화(落花)로
잔생(殘生) 의 삶이
스러진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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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물결의속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