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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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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다.
2002년 겨울, 동해바닷가 갯바위에서 너의 운명을 다하고 말았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듯 나의 슬픔은 말로 표현키 어렵구나.
부모를 잃은 자식의 마음이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로다.
내 바닷가 갯바위 위에서 목놓아 울었더니 파도가 슬피 울고
갈매기 또한 슬피 우니, 뱃고동소리 또한 따라서 울더라.
내 너를 만난지도 25년이 넘었으나
잠시도 너를 내 손에서 놓은 적이 없고 한 시라도 너를 잊은 적이 없노라.
주말마다 내가 가는 곳은 너를 데리고 갔으니,
부모보다 더 보살피고 아내보다 더 사랑하고 자식보다 더 아끼었노라.
이제 너를 잃은 슬픔이 어찌 크지 않겠느냐?
또 너를 잃은 슬픔이 이리도 크고 가슴이 아픈 것은
너를 이렇게 만든 그 원수 놈을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 날도 나는 동해바다에서 감성돔을 잡으려고 파도와 결전을 하기로 했었다.
원래 감성돔은 힘이 세기로 바다에서 소문난 놈들이라
너의 그 연약한 몸으로는 감당키 어렵기에
해가 지고 놈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 포획하기로 하고,
그 때를 대비하여 너의 큰형 뻘인 원투대를 준비해 놓았었다.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기에 잠깐 틈나는 대로
놀래기나 우럭을 잡으려고 너를 꺼냈지.
3호줄에 작은 유동추를 하나 달고 감성돔 3호 바늘에 우럭이 좋아하는
홍무시를 한 뼘이나 되게 길게 달아 찌도 없이 갯바위 구멍에 집어넣고
우럭이란 놈을 유혹했다.
지난주에도 그 자리에서 40cm 가까운 우럭을
너의 그 연약한 몸으로 잡아 올리지 않았던가!.
제법 거센 파도가 갯바위를 때리고 물결이 일 때 갑자기 너는 머리를
바다 속에 처박고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나는 너를 구하기 위해 너의 가느다란 허리를 이용하여 힘껏 처 들었지만
놈은 갯바위를 돌아서 도망을 가기 시작했어.
갯바위가 미끄럽지만 않았어도 파도가 높지만 않았어도
너를 두 동강내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그만 갯바위에 미끄러져 너를 갯바위에 의지하는 바람에
너의 그 가느다란 허리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으니,
내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은 너의 동강난 허리가 아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너의 허리를 동강내고 도망간 그놈을 못 잊어 하노라.
그 놈은 분명히 우럭이 아니고 더욱 더 놀래기는 아니다.
지난주에도 그랬듯이 우럭이 40cm나 쥐놀래기 40cm쯤은
네가 거뜬히 올리지 않았더냐.
그리고 민물에서도 70cm가 넘는 잉어를 걸고 20분이 넘도록
씨름을 해서 놈을 항복시키지 않았던가.
네가 아무리 늙어 골다공증이 있다해도 그런 놈들에게 쓰러질 네가 아닌데,
그렇게 너의 허리를 동강 낸 놈은 분명히 바다의 악마 감성돔!
그놈이 분명하다. 그것도 50cm가 넘는 놈이리라.
너도 알다시피 나 또한 40cm쯤 되는 놈을 놓친 적이 있었느냐.
너의 허리 탄력만 가지고도 그런 놈들은 거뜬히 해 치울 수 있는데
너를 동강낸 놈은 분명 대물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놈도 혼이 났겠지만 너의 허리를 동강내고도 유유히 바다를 헤엄쳐 다니며
우리를 비웃고 있으리라.
내 어찌 그 원수 놈을 잊을 수 있으랴!
내가 기필코 다시 찾아와 너의 맏형인 원투나 작은형인 릴 찌낚시대로
그 놈을 잡아 너의 원수를 갚고 나의 원한을 풀리라.
내가 그 놈을 잡으면 피를 뽑아 갯바위에 뿌리고 살을 도려내어
초장에 찍어 씹어 먹으리라.
또 그 놈의 껍질을 벗기고 뼈를 갈아 매운탕으로 만들어
한 방울의 국물도 남기지 않고 마시고 말 테니 너무 서러워 말아라.
원래 너의 선조는 너처럼 접을 수 있도록 생기지 않았다.
대나무를 베어다 불에 구워 곧게 펴고 마디를 곱게 다듬어
긴 장대를 어깨에 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긴 마디를 3자씩 토막내어 양철로 이어서 사용했으니
2칸, 3칸대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프라스틱이 개발되면서 수많은 너의 형제들이 태어나 이름조차
다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며,
내가 너를 만날 때만 하여도 너는 귀한 집 자손이라
모든 조사들이 너를 탐냈고
나 또한 비싼 돈을 치르고 너를 샀으니 애지중지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내 너와 더불어 안동댐 구석마다 아니 간 곳이 없고 저수지는 물론
강가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초 구멍 속에서 대물을 걸어내고 홍수 난 강물에서 메기도 잡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해 여름 홍수가 지나간 뒤 안동댐 상류에서
하룻밤에 월척 8마리를 잡을 때가 가장 신나는 밤 이였지.
언제나 처음 펴는 것이 너였고 또한 가장 마지막에 접는 것도 너였으니
내가 너를 얼마나 믿고 사랑했는지 잘 알 것이다.
접을 때는 언제나 물기가 없도록 타월로 닦아주고,
겨울이면 크림을 발라 너의 피부를 상하기 않게 하였다.
아 아! 슬프고도 슬프구나.
이제 너의 허리가 부러져 생명을 다 하였으니 이일을 어쩌란 말이냐?
너의 초릿대가 부러져 몇 번이나 고쳤지만 이렇게 허리가 부러지기는 처음이니,
남들은 너를 바다 물 속에 수장을 하겠지만,
나는 너를 고이 관속에 넣어서 병원으로 갔었다.
너를 수술하자니 나이가 많아 맞는 장기가 없고
너의 장기를 그냥 준다해도 가져 갈 사람이 없더라.
매장을 할 수도 없고 화장을 할 수도 없어,
나는 너의 몽땅한 대를 펴고 한없이 울다가 차마 너를 버리지 못하고,
너의 분신 5마디만 하여도 너의 아우들만큼 키가 큰지라,
압축 밴드로 손잡이를 만들고 병원을 다 뒤져서 너에게 맞는 신발을 맞추어
새로운 줄을 매고 보니, 손때 묻어 정이 든 네가
새로운 너의 동생들 보다 호감이 가는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봄이 오고 수초가 돋아나면
내 가까이 수초구멍 속에서 너의 진가를 다시 한번 시험코자 하노라.
그 때까지 너는 내 가방 속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그 때에 대물들을 마음껏 유린해 다오.
내가 죽으면 너를 나와 나란히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해야겠다.
죽어서 죽지 않고 너의 분신을 줄여 다시 태어난 너를 바라보면서
나는 하루 빨리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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