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친구
언제나 연락만 하면 따라나서는 친구가 있어 좋다.
전화만 주면 밤중이라도, 태풍이 불어도, 초상이 나도 따라 간다며
허허 웃는 전화를 끊고 옷을 챙겨 입으면 벌써 집 앞에서 경적을 울린다.
인사대신 시간이 급하다고 재촉을 하면서
털털거리는 중고차지만 힘은 좋다며
자기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내 짐을 트렁크에 싣는다.
회사의 당직은 다른 사람과 교체를 하였고,
내일 집안의 결혼식은 마누라를 대신 보냈다며
쫓기는 강아지처럼 냅다 달리는데, 교통순경도 무인 카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좀 천천히 가자는 나의 충고는 들은 척도 않는다.
구린내 나는 정치 이야기도, 복잡한 세상사도, 구차한 집안 얘기도 하지 않고,
지난주에 처음 발견한 소류지에서 혼자 찌를 내렸는데,
환상적인 입질에 대를 세우지도 못하고 수초에 걸려 도망간 놈의 비늘이
500원짜리 동전만 하니, 대물이 틀림없다며 그 곳으로 가자며 핸들을 돌린다.
흙탕길, 자갈길 가리지 않고, 차체가 돌에 닿아 쿵쿵거리고,
차 문이 나무에 긁혀 흠집이 생겨도,
차 돌릴 곳이 없으니 걸어가자고 해도, 끝내는 제방 위에 차를 세우고,
물만 봐도 좋다며 암내를 맡는 황소 마냥 코를 벌름거리며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포인터를 찾느라 저수지를 둘러보는 나에게
지난번 대물을 터트린 포인터에 나를 앉히고,
새로운 수초구멍을 뚫는 그를 보며 급하게 대를 편 후,
찌를 세우고 밑 밥을 던진 후 담배를 피워 물때쯤이면,
한 손에 라면을 들고 또 한 손에 소주병을 들고 와 고사를 지낸다며,
종이컵 가득히 술을 부어 저수지에 뿌리고, 또 한잔을 나에게 건네주고,
본인도 한잔을 단순에 들이키고는 라면 국물을 후루루 마시고
급하게 가는 뒷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밤이 깊어 찌는 꼼짝도 않고 추워가 목덜미를 파고들 때쯤,
차 속의 여벌옷과 따끈한 커피를 들고 와 나에게 건네주고,
수초 속에서 대물의 용트림을 보았다고 흥분을 한다.
졸음에 겨워 나도 몰래 의자에 고개를 눕히고 있으면,
휴대폰으로 나의 왼쪽 두 번째 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작은 소리로 알려주며,
자기도 멋진 찌 올림을 보고 챔질을 했는데 걸리지는 않았지만,
물을 뒤집고 도망가는 모습이 대물이 틀림없단다.
드디어 내 찌가 솟아오르고 대물을 걸어 물소리가 요란하면,
어느새 내 뒤에 뜰채를 들고 서서 대를 세우라고 훈수를 하고,
잡은 붕어의 입에 입맞춤하고 살림망에 넣으며 자기가 잡은 듯 즐거워한다.
밤새 입질을 못 받아도 투덜거리지 않고,
나의 월척과 자기의 잔챙이 몇 마리를 바꾸자고 떼를 쓰기도 하는 그에게,
월척을 주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잡은 고기를 자기가 잡은 것처럼 탁본을 해서 방안에 걸어두고,
오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는 모습을 보고 혼자서 웃음을 참지만,
나를 보고 눈을 껌뻑이는 그를 위해 내가 증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낚시를 하기 싫으면 차 속에서 음악을 듣거나, 산 위에 올라가 산나물을 뜯거나,
나무그늘아래 낮잠을 자더라도 먼저 가자는 말을 않고,
내가 먼저 대를 접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는 아량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흑돼지 삼겹살이 좋은 곳이 있다며,
시골 장터구석에 가서 막걸리로 갈증을 씻고,
어느 골짜기 숲 속에 그림 같은 저수지가 있는데
송화 가루가 날리고 아카시아 꽃이 피었으니수초가 돋았을 것이고,
대물이 나올 때가 되었다며 지도를 펴놓고 열변을 토하는 그가 나는 더 없이 좋다.
벌써 다음 번 갈곳을 정하고 이미 대물을 잡은 듯 흥분해 하는 그는,
미늘이 좋다며 새로 맨 바늘도 한 벌씩 주기도 하고,
새로 나온 떡밥의 냄새가 좋다며 써 보라고 주는 그에게 나는 미소를 줄뿐이다.
내 친구는 이름난 낚시터보다는 1/50,000 지도를 차에 싣고 다니며
작은 소류지를 찾기를 좋아하고,
작은 둠벙이라도 대를 담가보는 습관이 있다.
남이 뚫은 수초구멍보다는 생자리 새로운 구멍 뚫기를 좋아하고,
떡밥보다는 지렁이 미끼를 쓰기를 좋아한다.
양반은 얼어죽을지언정 겉 불을 쬐지 않는다며
아무리 고기를 못 잡아도 릴을 던지지 않고,
남이 잘된다고 옆에 가서 앉지를 않는다.
나의 기침소리와 발자국 소리에 붕어가 놀라 도망을 간다며 핀잔을 주는 그는,
대물을 노리기보다는 작은 붕어지만 찌 맛,
손맛을 즐기며 잡은 고기는 다시 놓아주고 다만 자연을 즐길 뿐이다.
낚시를 하는 동안 술 마시기를 자제하고,
담배꽁초는 종이컵에 모아 두었다가 돌아올 때는
언제나 쓰레기를 한 봉지 담아오는 그가 나는 한없이 좋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흘러간 옛노래를 흥얼거리는 그의 콧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대물을 꿈꾸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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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행의추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