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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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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분을 뵌 건 93년이었습니다.
대전 엑스포.
모처럼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간 김에
그 곳에 방학이라 내려가 있는 여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집으로 오라는 이야기에 놈팽이 3은 밥한끼 돈 굳히자고 좋더라고 달려 갔답니다.
밥 한끼는 왠 걸...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저녁먹고는 꼭 자고 가라는
말수는 적고 근엄하시지만...정이 많으신 후배의 아버님.
하루 편히 자고 떠날때에는 세명 모두의 주머니엔
두둑한 차비까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분을 두번째로 뵌 건...96년이었습니다.
다시 찾아 간 대전 그 후배의 집에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곤,
이번에도 배터지게 진수성찬을 대접 받았답니다.
그리고 세번째.
그 때는 그 여자 후배와 저의 부모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자리는 양가 부모님의 상견례 자리였으니까요.
그 분은...
바로 저의 장인 어른이 되셨습니다.
처가는 민씨 가문의 종가집.
일년에 무려 제사를 14번을 지내고,
깍듯한 예의 범절과 집안 전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
사실...서울에서 조금은 자유로이 살았던 저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 아내도 그런 가부장적인 집안이 싫어
오히려 처가보다 시댁이 더 편하다고 할정도였으니까요.
오죽하면 한 상에서 가족이 다 밥을 먹은 게 불과 몇년전부터일까요.
오죽하면 지금도 아내는
처가에 갈때면 매뉴키어 바른 손톱을 다 지우고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도 검은 색으로 다시 염색하고,
유일한 장신구인 귀에 걸린 귀걸이마저 떼고 갈까요.
저 역시 처가에 갈때면 함께 긴장이 되었습니다.
"김서방은 곱게 자라서..."
"김서방은 아무래도 서툴러서..."
"김서방이 그런 일을 해봤겠어."
화단에 물을 줄 때도,
정원에 잔디를 입히려 삽을 들어도,
무심코 하시는 그 말씀들.
나름대로 또래에서는 힘도 쓰고 손도 빠르다고 생각했던 저이지만,
핀잔은 아니지만 장인어른의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올때마다
마음 한편이 섭섭하고 더욱 더 장인어른은 멀기만 한 분이셨습니다.
장인께선 사회적으로는 나름대로 성공하신 분이셨습니다.
충청이남지역으로는
열손가락안에 든다는 토목회사를 운영하고 계셨으니까요.
몇년 전,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1,2년 더 일하다 은퇴할까 하네.
평생 먹고 살 만큼은 모아 놓았으니...시골 고향이나 내려 갈까 싶군."
평생 남한테 흠잡힐 일 하시지않고,
손님이나 어른께는 항상 진심으로 대접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장손으로, 가장으로서도 흔들림없는 집안의 기둥이신데다
재정적으로도 일가를 이루셨으니...저의 주눅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섭섭하더군요.
결혼이후, 맏사위이자 맏딸이
경제적으로 힘들 때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모습이...
아내가 말씀은 안드렸지만 아마도 장모님을 통해서 분명 아실텐데도
따스한 말한마디 없으신 모습이...
아내와 저 역시 그런 장인어른의 성격을 아는 지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지만
가끔은 주변에 누군가가 위트있고 정많으신 장인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부럽기만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작년. 12월 6일.
이미 회사를 다른이에게 경영을 맡기고 물러나신 장인께서
회사사정이 어렵다고 다시 복귀하신지 1년즈음 지난 그 날.
장인어른의 회사는 부도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처가의 그 많던 부동산은 모두가 남의 소유가 되어버리고...
남은 것은 달랑 부여에 있는 시골집과 선산뿐.
그제서야 깨달았지요.
지난 몇달전부터 시작된 장인어른의 변화된 모습의 이유를...
"여보...아버지가 3000만원을 보내셨어. 빚 갚으라고...
또 어머니도 500만원 따로 몰래 보내주시고..."
작년 어느날 퇴근한 나에게 아내가 전한 뜻밖의 희소식.
결혼 후 10원 한장 안보내신 장인께서 왠일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어설프게 시작한 카페의 빚에 시달리던 전,
목마름에 허덕이며 그 돈을 덥석 받았습니다.
"여보, 아버지가 에어컨 사라며 돈 보내셨어."
또 여름이 오자 아내는 또다른 이야기로 저를 송구스럽게 하더군요.
그 때 알았어야 했습니다.
이미 회사의 위기를 예감하시고...
그동안 젊어 고생은 사서하라는 엄한 가르침을 주셨던 장인께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재산이 있을 때에 보탬을 주고 싶어하셨다는 마음을.
이제 그분은 더이상 사장님이 아닌, 산골의 촌로가 되셨습니다.
이제, 저의 처가도 대전이 아닌...부여가 되어버렸지요.
내일 부여에 내려가기로 하고 회사일을 보고 있던 중 걸려온 아내의 전화.
"여보...어버님이 전화 좀 해달라시네?"
이런 일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김서방?
내가 몇 번 여기 내려와 소일거리로 낚시를 해봤는데...
김서방이 낚시 좀 한다면서?
이번에 내려 올 때 낚시대 좀 가져와 보겠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씀에 적잖히 놀랐지만...
결혼 후 10년만에...
처음으로 장인어른과 하나의 공감대가, 공통화제가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 수로낚시하고 저수지는 채비가 다르나?
물흐름이 적은데...깊은 곳이 잘 잡히나?"
통화시간 8분7초.
궁금한 것이 많으신지...이것저것 물으시는 질문에
처음으로 결혼 이후 5분이상을 장인어른과 통화하고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장인 어른!
제가 100% 완벽하게 장비를 갖추어 내려 가겠습니다!
평생을 취미라곤, 오락이라곤 모르시던 어르신.
모자란 사위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틈이 없던 어르신.
늘 모자란 것 같던 사위가...
처음으로 당신께, 잠시라도 시름을 달래드릴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장인어른의 마지막 말씀에 전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리 밑밥을 내가 던져 놓을까?"
********* 가슴이 설렙니다. 조과가 좋아야 할텐데...태풍이 온다니까요.
주말에 다녀와서 조행기, 바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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