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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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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낚시잡지를 뒤적이다가 대아지에 관한 기사를 보고 지나간 30여 년의 세월을 후딱 뛰어넘어 씩씩한 군인 뿌구리로 돌아간다.
73년인가 지독히도 덥던 7월 달에 논산훈련소로 입대를 해서 며칠간의 대기병 생활 끝에 더플백 을 꾸려서 누구나 울고 넘는다는 아리랑고개를 넘어 가서 여산 “제 2 하사관 학교”라는 데서부터 이바구가 시작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훈련소라면 다 지긋지긋하고 배고픈 기억 밖에 없겠지만 그해는 어찌 그리도 덥던지 훈련 중간 중간에 알약으로 된 정제소금을 밥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재수가 좋았던지, 그 넓은 연병장을 맨발로 행군해도 연병장주위의 포플러나무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는, 군기가 세기로 소문이 뜨르르 한 하사관 학교 교육을 날라리로 대충 받는 기회가 나에게 왔는데 다름이 아니라 100여명이 동시에 자동화사격을 할 수 있는 사격장을 만든다는데,
나와 대구에서 극장 간판 을 그리다 온 동기 한명과 사격장 조감도를 그리는 사역병으로 뽑혔다.
땡볕아래서 동기들은 더플 백으로 흙을 퍼다 나르며 사격장 공사를 조지 부시가 빠지도록 일을 할 적에 우리 두 명은 조감도 스케치를 한다고 사격장이 내려다보이는 산위에 올라가서 나무그늘 밑에 죽치고 앉아서 쨍쨍 내려 쪼이는 해를 원망도 하다가 졸기도 하고 가끔 아주 가끔은 일도 하는 척 하면서 그렇게 훈련기간을 죽여 나갔다.
두 훈련병이 눈치는 있어가지고 훈련기간에 맞춰가면서 나무그늘에서 피땀을 흘려가면서(?) 사역에 열중하다 보니 나중에는 운동부족으로 소화도 잘 안되어 애를 먹기도 했다.
미안스러웠던 건 그 더운 날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배식담당 동기가 밥을 그 산위에 까지 날라다 줬는데,
우리는 이동 피엑스에서 사서는 나무밑에 묻어두고 둘이서 홀짝거리던 드라이진을 같이 마시는걸로 조금이나마 그 미안한 맘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몇 주를 산위와 사격장 한쪽 나무그늘 아래에서 며칠이면 끝낼 일을 붙들고 고무줄 늘리듯 늘리고 또 늘리다 보니 어느덧 10주간의 훈련중 마지막 주간이 되어 일주일간 유격훈련을 간다는데 부대장이 훈련병은 한명도 예외가 없이 훈련에 참가 하라고 하니 조감도일은 끝도 맺지 못하고 신선 같던 산상생활도 그 끝을 보았다.
저녁 먹고 한잠 자고 일어나 12 시에 출발을 해서 운암산 고산유격장으로 야간행군을 하는데 한 30 분 가다가 인원점검 하면 중간에서 번호가 끊어져 기합 받고 가다가 기합 받고 하다 보니 어언 날이 밝아오고.
저 앞에 저수지 제방이 보이는데 그 반가움이란! 지금까지 걸어온 고달 품도 잊고 빨리 물이나 봤으면 하는 희망에 부풀어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날이 완전히 밝을 때 쯤 저수지 제방가까이 까지 왔는데 사방에서 총소리가 콩 볶듯이 나더니 조교들이 “간첩 나타났다”고 빨리 잡아오라고 닦달을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뿌구리 걸음 느린 거야 알아줬는데 뒤에서 아무리 몽둥이로 치면서 산으로 올라가라고 밀어붙여도 동기들은 벌써 산위에서 “간첩 잡았다!”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나는 겨우 저수지제방에 올라서서는 시퍼런 물빛에 넋을 놓고 바라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운암산 고산유격장 이란다.
저수지 이름은 대아지, 일제 강점기 때 만들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큰지 저수지 끝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도착한 날은 그야말로 소변도 안 나올 정도로 돌림을 당하고 저녁 먹고 점호시간 까지도 계속 돌리기만 하는데 먹은 밥이 거꾸로 나올 지경이더라.
나중에 우리조교가 귀띔을 하는데 유격장 피엑스에 술이 있는데 그걸 팔아줘야 우리가 편 할 거란다.
술! 이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맨발로 뛰어나간 동기들은 PX에 그득히 쌓여있던 포도주상자를 저수지가로 이동하더니 밤이 지세도록 퍼먹었었다.
입대 후 공식적으로 먹으라는 술인데 말해 뭣하랴!
돈? 그건 걱정 말란다.
우리의 조교, 우리들 이름 꼼꼼히 적으며 고리대금업으로 금방 직업을 바꾼다.
당연히 담날부터 유격장 조교들의 눈매가 부드러워 진건 두말할거 없고.
첫째 날은 몰랐는데 점심때 식판을 닦으러 물가에 갔더니 잔반을 먹으려고 고기들이 모여드는데 온 저수지 바닥이 물고기로 가득차서는 물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아 그만 내 눈이 확 뒤집어진다.
그때부터 훈련이고 나발이고 저놈의 고기를 어떻게 잡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도는데 그 어렵다는 PT 체조도 별 어려움 없이 견뎌내고 오로지 화두는 고기!! 그것 뿐.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기발한 생각이라니
다름 아닌 조교들이 메고 온 총 이었다.
우리는 M-1 인데 조교들은 칼빈 엠- 2 인데 거기엔 자동사격장치인 강철 스프링이 하나들어 있는데 고것만 손에 넣으면 저 고기들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가 아닌가?
그날 밤에도 조교들이 PX에 보충시킨 포도주들을 작살내느라 고래고래 소릴 질러가면서 술들이 한참 무르익어갈 적에 막사로 살금살금 들어가 칼빈총 을 분해해서 그 스프링을 손에 넣었다.
아시겠지만 그 스프링이 없다고 해서 총이 발사가 안 되는 건 아니고 다만 연발사격이 안될 뿐인데 자동, 반자동으로 바꾸는 레버가 헐렁하게 움직일 뿐 다른 이상은 하나도 없다.
고로 내가 큰 죄를 지은 건 아니라고 지금까지도 굳게 믿고 있다.
다음 날 훈련 틈틈이 나는 계속 그 스프링을 가지고 대검으로 자르고 돌에다 갈고 불로 달구고 꼬부리고 해서 훌륭한 바늘을 두 개 만들었다.
포승줄을 풀어서 꼬아 낚싯줄을 만들고 채비두벌을 만들어 놓고 저녁때가 되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
3일째 날 저녁에 역시나 술판이 벌어졌다.
저녁 먹을 때 풀잎에 싸뒀던 밥풀을 들고는 물가로 살금살금 내려가서 정성스레 밥알을 이겨가지고 콩알만 하게 바늘에 달아 던졌더니 “퐁” 소리와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내손에 전해지더니 몇 초 만에 상황 끝!
하나 남은 낚시는 만들어 놓은 채비(?)에다 차고 있던 포승줄을 길게 연결해서 강한 입질 에 끊어지지 않도록 준비를 하고 발사! “퐁“ 좀 있더니 역시나 입질이 왔는데 줄은 끊어지진 않았는데 얼마나 힘이 좋던지 도저히 제압이 되질 않는다.
계속 와당탕! 풍덩!!
거리며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니까 술 취한 동기들이 뛰어 오고 유격장 기간 병들 도 내려오고…….
그때 얼른 고기를 놔 줬으면 이야기꺼리도 안 될 건데 미련스레 그 포승줄을 잡고는 자랑스레 “고기 잡았다” 고 소릴 질렀으니
유격장 조교들에게 개 끌려가듯이 막사로 끌려가 밤새도록 똥물이 나오도록 터지면서 기합을 받았는데,
유격장 조교들 말이 몇 해 전 선배기수가 도하훈련을 하다가 몇 명이 익사 한 사고가 난후로 저수지 고기를 잡으면 사고가 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와 유격장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고기를 잡으면 뒈진다는 불문율이 있다는데 고기에 눈이 확 뒤집힌 뿌구리가 그걸 어찌 아누?
지겹도록 맞고 또 맞으면서 속으로는 “내 다시는 고기 잡으면 성을 간다” 며 이를 아드득 갈면서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었다.
(아직도 낚시는 여전히 하고 있는데 다짐한 것도 있고 해서 성을 갈려고 했더니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된다나 뭐라나 해서 할수없이 그냥 그때 성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
그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사격장 조감도를 마무리해야 되는데 두 명이 필요하다며 지프차로 우리를 모시러 와서 지옥 같던 그 유격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고하러 막사에 갔더니 유격장 조교들이
“여기서 맞았던 거 이야기 하면 부대 찾아가서 죽인다. 보안 지켜라!”
" 니끼미 나도 부대가면 졸업인데 언놈이 날죽인다는겨? ㅆ ㅂ ㅏ ㄹ!" 했더니 조교가 얼굴만 씰룩거리며 노려보는데 맞아 아픈 건 간곳없고 얼마나 통쾌하던지.
군대시절 에 고생했던 곳으로는 "오줌도 안눈다" 라고들 하지만
운암산 고산 유격장 에서 따먹던 어름 의 달콤하고 시원한 맛과, 깨금의 그 고소한 맛, 그리고 붉게 단풍으로 물든 산이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해서인지 눈이 시리도록 파란 대아지의 물속에 풍덩 잠겨있던 그 풍경이 가슴이 아리도록 그립다.
이 가을 단풍이 지기 전에 마누라 모시고 짤막한 낚싯대도 한대 넣고 그 곳으로 추억 여행이나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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