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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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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4-22 21:00:55 / 조회 : 3,004
/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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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감기가 심하다고 하더니 남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처가 감기로 심하게 앓고 있다.
처음엔 기침을 좀 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가 비상용으로 병원에서 타다놓은 감기약을 먹으라고 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왔더니 병아리 목 틔우는 소리와 같이 끽끽 거리는 목소리를 내면서
"다녀 왔나며" 인사 하더니 몸을 재대로 가누질 못한다.
“그리 심하게 아프면 병원에 가지 와 누워만 있노.” 라는 소리를 꽥 지르니 마누라는 한숨을 푹 쉬더니 돌아누워 버린다.
아차!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동내 병원에 다녀온 처는 약 한 봉지 먹고는 다시 자리에 눕고 만다.
아까의 미안함도 있고 해서 죽을 쑤어야 갰다 싶어서 부엌에 나가보니 늘 보던 부엌이 낯설기만 하다.
감자, 당근도 설고 다시마 넣고 고기도 조금 다져넣고 해서 죽을 쑤어 처와 마주 앉아 먹으려니 새삼 마누라의 존재의 소중함이 뼛속 깊이 새겨진다.
처는 내가 끊여줬다는 그 사실만 해도 고마운지
“한 번씩은 아플 만하네. 남편이 끊여준 죽도 먹어보고.” 이러면서 아픈 것도 잊고 내가 해 줬다는 것 미안해 하면서도 싫지만은 아닌가 보다.
그걸 본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애처로운 마음에 눈에서 물 한 방울이 똑 숟가락 위로 떨어져 죽에다 간을 맞춰준다.
친정에서 막내로 태어나 온갖 귀염을 받고 자랐다는데 난데없는 산 도적 같이 생긴 서방 만나서 땅 설고 물 선 이곳까지 내려와 결혼 생활 30여년이 되는데 그중 20 몇 년을 남편 병수발 하느라 청춘 다 보내고 살아 왔는데.
감기 들었다고 꼴 난 죽 한 그릇 서방한테 얻어먹고서 저리도 감격 해하다니
그동안 내 몸 아픈 것만 알았지 나 때문에 고생한 처와 자식들한테 너무 무심했었구나 하는 미안한 생각에 때 늦은 후회도 해본다.
뭐가 꼴값한다더니 허구한 날 새끼 따순 밥해라, 술상 봐라,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 불러다 밤이 늦도록 떠들고 놀고 해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그저 병든 서방하고 놀아준다는 것만 고마워서는 있는 거 없는 거 해 먹이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몸이 성할 때는 시골에 처박아두고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친구 부르고 겨울이면 겨울이라고, 가을이면 또 가을이라 불러내려서는 몇날 며칠씩 뒷바라지 하면서도 한 번도 얼굴 붉힌 적도 없었는데 나는 그게 한 가정의 주부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 인줄 알았는데 시내로 나와 내가 남의 집을 방문해 보니 그런 게 아니로구나 하는 것도 알았었다.
철들자 망령난다고 이러다 또 내가 망령이나 나려나?.
인간은 항상 지나봐야 그게 귀한 줄도 알고 고마운 것도 안다고 하던가.
지금부터 라도 마눌 귀한 줄도 알고 고마운 것도 알아야 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내외 서로 늦게 만나 살아온 세월인데 저질러 논 새끼 들이나 짝을 맞춰줄 때 까진 어떻게든 숨을 쉬며 살아야 할 터인데 하는 걱정도 해본다.
한 번씩 몸이 아프다거나 아니면 다른 일들로 서로를 확인해 주는 계기를 준다는 게 고맙기만 하다.
마누라야 몸이 아프건 말건 이렇게라도 나를 깨우쳐 주는 미련 곰탱이 같은 마눌이 오늘은 쬐끔 이뻐 보이니 슬쩍 다리라도 올려보고 찝쩍거려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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