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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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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 월26일.
새벽에 또 옷을 갈아입는다.
뒤가 터진 수술복, 그리고 팔목에 인식표. 엉덩이에 신경안정제라나 주사 한방 맞고.
10여 년 동안 26번째 수술을 하기 위해서 준비 중인데 매번 이 옷을 입을 때 마다 이번이 마지막수술이 이었으면 하고 빌어 온 것이 어언 26 번째에 이르렀다.
88년도 이식수술 실패 후 지루하게 이어져온 수술과 투석생활 끝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온 것이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가기전의 짧은 시간동안 만감이 교차한다.
살기위해 살아온 게 아니고 죽을 수가 없어서 살아 온 나날들이다.
아내와 자식들 10여 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 5살과 3살 때부터 아버지란 사람이 늘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고 남들 다 가는 놀이터라든가 유원지의 나들이는 저희들 스스로 포기한 게 오래전이고 내 앞에서 맘대로 뛰놀지도, 큰소리도 삼가면서 지내온 세월들이 철모르는 아이들을 애늙은이로 만들어 논 기간들이었다.
나 하나만 보고 서울서 시골로 내려와 좋은 시절도 없이 여태껏 남편 병수발만 한 아내, 내가 처음 발병을 해서 서울로 가서 입원을 했을 때 두 아이와 고향집에 남은 아내는 낮에는 집에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다가 밤이 오면 그 큰집에서 두 아이를 껴안고는 매일 밤을 울고 지냈다는 후일 동내사람들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
내가 서울로 가고 밤에 우리 집에서 저녁마다 귀신이 나온다고 동내사람들이 수군거렸단다.
그 큰집에서 아내가 우니까
한옥이다 보니 공명이 생겨 울음소리로 들리질 않고 그저 우~~웅 거리는 귀신소리로 들렸었단다.
그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온 면내에서 다 알았다는데 정작 아내만 몰랐었다고 하니 그 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님.
아버님의 투병 기간 동안 부모 앞에서 죽는 불효는 저지를 수 없다고 정말 죽을 수가 없다고 버텨온 나날들이 눈앞을 스쳐간다.
편찮으신 중에도 전화를 하셔서 좀 어떠냐고 물으실 적엔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괜찮습니다." 고 말씀을 드리곤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드렸지만 그 말속에 묻어나는 자식의 병색 짙은 목소리를 금방 알아채시곤 끼니도 거르시며 그렇게 걱정을 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3년여의 암과의 투병 끝에 94년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후에
한 편으론
“이제는 내가 죽어도 ”불효자” 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 하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었다,
부모 앞에 아픈 것도 큰 불효이지만 부모를 두고 자식이 먼저 죽는다는 건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4 년 후에 찾아온 수술의 기회인 것이다.
매번 수술실 앞에서
“수술잘 받고 나오라” 는 아내의 격려의 말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이 난다.
수술실 문이 닫히기 전 아내의 얼굴은 항상 웃는 듯 우는 듯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배웅한다.
게오르규 원작의 영화 “25시” 에서 모리츠로 분한 안소니 퀸이 2차 대전 후 끌려갔던 전장에서 돌아온 기차역에서 “웃어!” 라는 사진기자의 다그침에 씨가 다른 자기 딸을 안고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우는 얼굴로 억지웃음을 짓는 귀향 장면을 떠 올리게 하는 아내의 얼굴.
입은 웃으려는데 눈은 울고 있다.
그 아내의 얼굴을 보면 나는 매번 눈물로 아내와 이별하곤 한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저 묘한 표정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눈물인가 보다고 생각도 해본다.
수술실안.
하얀 타일 벽, 그리고 녹색 등, 매번 엉뚱하게도 이곳이 도살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술실 방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수술대기 환자와 이미 진행 중인 수술대위에는 마취로 정신이 떠나버린 육신들이 누워있다.
은행을 털러 가려는 듯 한 복면을 한 사람들이 내 옆에 도열하고 그중 한명이
“뿌구리씨 기분 어떻습니까? 우리 구면이죠. 편안하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됩니다.
자 깊은 숨을 들이키시고 주무세요. “
“구면이 아니라 단골입니다. 덤으로 거시기나 하나 더 달아주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는 듯 너울거리며 멀어져 간다.
다행이 수술이 성공적 끝났고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번에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주치의가 나보다 더 반가워하면서 축하의 말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친척들 그리고 많은 친구들 또 같이 투병생활을 하는 환우들 모두들에게 받았던 도움들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같이 투석을 하던 환우들이 거의 다 죽고 몇 명만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다
돈이 없어서 죽고, 돈이 있어도 정신력이 약해서 스스로 포기해서 죽고, 의료진을 잘못만나서 죽고, 이래저래 내 옆에서 죽어간 사람만 해도 60 여명이 되는 것 같다.
이제는 그 사람들의 모습도 가물가물 한 게 기억도 나질 않는다.
저 세상에서는 아프질 말고 잘 지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병고에 시달리고 삶이 고달플 때 물가 낚시터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놓아버리고 싶은 생명의 끈도 물가에 나 앉으면 나도 모르는 자연의 힘이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실어 주는 것을 자주 느꼈었다.
이렇게 살아서 “낚시” 라는 매개로 여기서 이렇게 여러 님 들을 만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나에게는 크나 큰 축복이다.
이즈막 지난 어려웠던 시절들을 망각 하고 점점 교만 해 지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다.
멀리 걷지 못함에 대한 짜증.
산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기 싫어하는 나태함.
지하철에서 계단 오를 때 힘들다고 내는 신경질.
낚시터가 차에서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가지 않으려는 게으름.
이러다 보니 지난날 그토록 갈구 하고 애절하게 매달리던 겸손함도 없어 진듯하다.
이런 나의 생활에 두려움도 느낀다.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하는 생각을 언뜻언뜻 해보지만 그때 뿐,
지난 일들을 망각하고 오만스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느껴지는 두려움이다.
이제 덤으로 새롭게 삶을 살아온 세월이 십년이 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나도 십년이 되는 이 시점에 마음을 다잡아 겠다.
지금까지 나한테 얽매여서 기죽이며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좀 더 살갑게 보듬어 줘야 겠다.
주위 모든 사람들 에게도 감사하는 마음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된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한번 파괴된 몸뚱이나 자연은 결코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 법이니까.
* 즐겁지도 않고 지겨운 이런 이야기를 여러님 들 께 하는 건 초심을 잃고 자꾸 나태해져 가는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열 살된 애늙이의 축하를 받고 싶은 재롱(?)이기도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복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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