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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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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산자락으로 조금씩 여명이 자취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기대감을 접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옴을 알고 나는 담배갑의 마지막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복은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세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의지와 열정으로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너무도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것이 모든 세상사가 아니던가 …
체념속에 물끄러미 밝아오는 수면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3칸대의 찌 앞쪽의 부들 수초밭에 이상한 현상이 파악되었다.
분명 바람한점 없는데 부들수초가 슬며시 움직였다. 마치 한가닥 한가닥
셈을 하듯 천천히 움직이며 찌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엉덩이를 들어 자세를 고쳐 잡은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다 잠시, 수초의 움직임이 멈추고 한동안 주변이 고요 해 지는것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의 말초 신경은 온통 하나의 찌에 집중되어 있었다.
깜빡하는 예신이 곧바로 들어왔다..
" 옳지 ! 드디어 녀석이 나타 났구나 ! "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천히
대의 손잡이를 잡았다. 찌는 반마디가 잠긴채 한참을 미동이 없었다.
얼마간 지루함을 느낄때쯤, 슬며시 두마디가 올라왔다.
챔질을 인내하며 본신으로 이어질 타이밍을 기다렸지만, 영악한 녀석의
신중함은 1분이 넘도록 찌에 어신을 전달하지 않았다.
피를 말리는 놈과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혹시 새우만 건드리고 사라진것은
아닌지.. 아니면 지금 챔질을 하여야 할지 혼란스러워 졌다.
하지만 성급하게 대를 들었다가 놓쳐 버린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알고 있기에 뚝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때였다.
마치 수평선에 해가 떠오르듯 천천히 솟아오르는 찌톱은 거의 몸통까지
이어졌다. 그모습을 보는것 만으로 충분히 황홀감을 느낄 수 있는 찌올림은
순식간에 나를 무아지경에 빠뜨렸고, 이윽고 찌를 슬며시 옆으로 끌고 가려는
순간, 힘차게 챔질을 하였다.
"" 피 피 ~~ 피융!! "
무릎을 접고 몸을 뒤로 젖히며 대를 세우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 웅웅 " 거리는 대의 울림을 느끼며, 손목이 꺽일듯한 강한 힘이 전해졌다.
" 흡!! 흡 !! "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쳐박히는 힘을 힘차게
제압해 나갔다. 녀석은 또 다시 방향을 내가 서있는 물가 쪽을 향해 치달았지만
두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나는 두어 걸음 뒤쪽으로 물러나며 대의
평형을 유지했다.
드디어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황갈색의 거친 비늘과 엄청난 크기의 꼬리 지느러미를 보는 순간, 붕어가
아니라 차라리 괴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얕은 수심까지 끌어 내어 원줄을
잡으러 손을 뻗치는 순간,…
녀석은 강력한 꼬리 지느러미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좌측으로 쏜살같이 내 달렸다.
그 바람에 모래가 섞인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움찔 하는 사이에 녀석은 이미 부들 수초를
감아 버렸다.
튼튼한 원줄과 경질대도 몇바퀴 감아버린 부들을 털어내기엔 역부족 이었다.
물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녀석의 거대한 몸통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낚시대를 던져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허리까지 잠기는 수심이었지만, 녀석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첨벙 첨벙 걸어들어가 녀석을 안았다.
억센 녀석의 몸부림을 뿌리치고 거의 강제연행하듯 물가로 끌고 나온후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녀석과의 한판승부에 체력을 소진했고, 쌀쌀한 새벽공기에 온몸이 젖어버린 나는
거친숨을 몰아 쉬며, 너무 지쳐 버렸다. 의외로 녀석은 물밖으로 나오자 아가미만 뻐끔
거리며, 너무도 얌전히 누워있었다. 이곳의 제왕다운 담담한 모습과 거대하고 매끈한
체구에서 단순히 대물붕어라는 것 이상의 묘한 신비감이 맴돌았다.
녀석의 크기를 재어보니 대략 45센티가 넘는 엄청한 대물임엔 틀림없었다.
산자락에서 떠오른 새벽햇살에 녀석의 눈부신 황금비늘이 번쩍였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 지리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나는 녀석을 담아갈 쿨러를 준비하려다 녀석과의 눈이 마주쳤다. 깊고 커다란 눈망울이
마치 나를 찬찬히 훓어 보며 체념한듯한 슬픈 분위가 베어있었다.
순간,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마치오래된 평화로운 작은왕국의 제왕을 제거하는듯한 편하지 않는 마음이 밀려왔다.
한동안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다, 결국 물가에 놓아 주었다. 한동안 녀석은 가지 않은채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듯 하다 꼬리를 흔들며 천천히 수초사이로 사라졌다.
선배의 부탁도, 나의 기록에 대한 흔적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지만,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편했다. 언젠가 그 누군가에 바늘에 걸린다 하더라도 녀석은 나에게 했던것 처럼
강한힘과 지혜로 벗어날것을 기원하며 이 작은 소류지의 당당한 주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주기를 바랬다.
어느덧 아침햇살은 수면에 눈부시게 부서지며, 서서히 물안개를 걷어들이고 있었다.
철수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젖어버린 웃옷을 벗자, 옷에 붙은 동전같은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살펴보자 그것은 아까 그녀석의 비늘이었다.
마치 통기타를 연주하는 피크와 비슷한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비늘은 반투명한 황금색을
띈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마치 녀석이 그동안 모진 나와의 인연에 이별선물을 주듯 자신의 흔적을 남겨주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주머니속에 녀석의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왕국속에서 유유히
헤험치고 있을 녀석을 떠올리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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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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