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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행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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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창문이 훤하여 아침인가보다 하고 일어나서 밀 창을 열어보니 파르스름한 차가운 달빛이 가득히 내려 앉아 마당을 거닐고 있다.
달빛은 햇볕과 달리 비출 것은 비춰주고 감출 것은 감추어주는 배려와 수줍음이 있는 것 같아 내가 좋아한다.
이렇게 달빛이 차가운 날에 물가에 나앉으면 거시기가 얼기 십상이라 겨울 술안주로 최고인 고소하고 맛있는 참새나 잡아보자.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집에 홍 씨라는 사람이 머슴으로 있었는데 골격이 큼직큼직하고 힘이 좋아 일도 시원스럽게 잘해서 일등 일꾼이었는데 다만 술이 좀 과한 게 탈이었다.
황당한 면도 있어 자기는 홍길동의 후손이라고 흰소리를 해서 조부님께서 "실없는 놈!" 이라는 핀찬을 듣기도 하는 인물인데 나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이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만들어주고 나와 잘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집에는 술독에 항상 술이 아랫목에서 뽀골 거리며 익어가는 시기이다.
이 술을 먹기 위해서 홍 씨는 나에게 팽이며 연을 만들어주며 날 꼬드겨서 술독으로 들락거리게 만드는 재주도 또한 비상 했다.
그 중에.
술을 가지고 참새를 잡아준다며 맑은 술을 떠오라더니 쌀 한 움큼을 그 술에 버무려서는 참새가 잘 앉는 곳에다 뿌려두고는
“참새가 날아와서 저 쌀을 먹으면 짚 북더미에 들어 누워서 졸 때 가서 줍기만 하면 된다.” 며 기다리란다.
나머지는 물론 자기 입에 다 부어 넣은 건 당연지사이고.
홍 씨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데도 술에 취해 조는 참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 후
어느 날밤에 새끼줄을 꼬면서 홍 씨가 이런 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심심한데 참새나 잡아 구워 먹자.” 고 나를 꼬드긴다.
저번에 속은 일도 있고 해서 입을 불쑥 내밀고 싫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잡아 주겠다며 큰소리를 치는데 어수룩한 내가 또 넘어가서 술을 몰래 퍼 내오고 얼굴이 불콰해진 홍 씨와 나는 삿갓과 초롱불과 광목자루를 들고 뒤란 대밭으로 향했다.
홍 씨 말로는
내가 초롱불을 들고 삿갓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자기는 대밭으로 들어가 잠자고 있는 참새를 대나무를 흔들어 깨워서 날리면 자다가 놀라 잠이 깬 참새들이 내가 들고 있는 초롱불빛을 보고 날아오다가 삿갓에 부딪쳐 떨어질 건데 그때 정신을 잃고 떨어진 참새가 정신 차리기 전에 나는 얼른 그 참새를 주워서 광목자루에 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이론으로는 완벽한 것 같아 또 넘어간 것이다.
그 시절 춥기는 얼마나 추웠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참새를 잡아 구워먹을 생각에 뿌구리는 그 날 응달포수 조~옷 떨듯이 와들와들 떨면서 삿갓 쓰고 앉았다가 고뿔이 들어 그 겨울 내내 죽을 고생만 했다.
오늘같이 달빛이 밝으면 안 되고 그믐 때쯤에는 될 것도 같은 생각이 드는데 참새고기가 먹고잡은 살라미들은 한번 쯤 시도 해보시길 간곡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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