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아내
제1부
(맞선)
"자기야, 또 낚시 갈려구?"
박대포는 토요일 퇴근을 하자 마자 낚시가방을 울러 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 어영순이 문을 나서는 박대포의 뒷덜미는 잡고 늘어진다.
"응, 얼른 갔다 올게"
"밤낚시를 얼른 갔다 오는 게 어디 있어. 밤샘하고 오잖아!"
벌써 아파트 마당에서는 친구의 크락숀 소리가 요란하다.
"자기야 낚시는 다음주에 가고 내일은 우리 단풍놀이 가자. 응?"
"다음주에 단풍놀이 가면 되잖아!"
"그 때는 단풍이 다 지고 없단 말야. 붕어는 다음주에도 있잖아."
"대물이 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줄 알아!?"
대포의 눈에는 마른 부들 속에서 대물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친구가 지난주에 월척을 네 마리나 잡았다면서 꼭 대포만 데리고 간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하라며,
가을의 짧은 해가 지기 전에 대를 펴고 밑밥을 쳐야 하기에 서둘러라 하는데,
아내가 뒷덜미를 잡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은 더욱 급하다.
얼른 지갑을 꺼내 만원권 한 장을 아내 손에 쥐어주며,
"맛있는 거 사 먹어. 내가 커다란 놈 잡아다가 고와줄 께" 하고 달래니,
영순은 손을 떨치며
"내가 뭐 어린애야, 만원에 꼬시키게..." 하고 앙탈을 부린다.
대포는 급한 김에 두 장을 보태서 영순의 손에 쥐어준다.
영순은 슬그머니 받아 쥐고는,
"자기야 나도 데리고 가 줘!"
하고 사정을 한다.
"친구들과 같이 간단 말이야."
"친구들 있으면 어때? 차안에서 조용히 있을 께"
"안 돼! 친구들이 부담스럽잖아. 또 오줌 마렵다 할려구?"
대포는 영순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친구들 보기도 미안하고
마음에 부담이 되기에 데리고 가려 하지 않는다.
"밤에 혼자 자면 무섭단 말야."
영순은 여전히 남편을 놓아주지 않았다.
밖에서는 또 크략숀 소리가 울린다.
"방문을 꼭 잠그고 자."
"뭐 귀신이 방문 열고 들어오나?"
"귀신이 어딨어!"
"귀신 있단 말야. 밤에 창문 밖에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어."
"TV 소리를 크게 틀어 놓고 자면 돼."
"그러면 시끄러워서 잠이 안 와."
영순은 돈을 받고도 끝까지 물고늘어진다.
"밖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잖아!"
대포는 이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순은 주머니에서 뭘 꺼내더니 활짝 펴서 대포의 코앞에 들이댔다.
"이게 뭐야?"
"자기가 나에게 써준 각서야. 벌써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대포는 각서를 보자 금방 풀이 죽어 씨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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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포가 대학을 졸업하고 제법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니,
이리 저리 결혼을 하라는 중매가 들어와 여러 번 맞선을 보았지만,
모두 다 대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고모가 참한 처녀가 있다며 꼭 한번 만나보라고 권하기에 마지못해
일러준 카페에 나갔더니, 대포의 입이 떡 벌어지는 미녀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첨 뵙겠습니다. 박대포라고 합니다."
대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호호호!! 이름이 웃기네요. 대포라..."
자리에 앉으며 영순이가 말했다.
"원래는 박대호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낳자 클 대(大), 범 호(虎),
호랑이 처럼 남자답고 씩씩하게 살아가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친구들이 대포라고 불러서 지금은 그렇게 통한답니다."
"덩치는 그럴만 한데요, 거짓말을 잘 하시나보죠? 대포라면 허풍이 세다는 뜻인데..."
"뭐, 남자답고 힘이 세다는 뜻도 있죠. 허허허"
사실은 대포는 허풍이 세다.
낚시를 많이 다닌 까닭에 붕어 크기가 팔뚝만하기도 했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시원시원해서 허허 너털웃음도 잘 웃고
악의 없는 거짓말을 곧잘 하곤 하였던 것이다.
"어영순이라고 해요."
볼우물을 살짝 지으며 고개를 까딱하는 인사는 대포를 오금 못 쓰게 만들었다.
"그 쪽도 이름이 별나네요. 영순이라..."
"잘 보셨습니다. 원래는 길 장(長), 순할 순(順), 우리아빠가 맏딸이라고 장순이라고 지었는데,
학창시절에 나를 따라 다니는 머슴아들이 데이트 순위 0순위라고 영순이가 되었답니다. 호호호"
늘씬한 키에
시원한 이마,
호수 같은 눈,
오똑한 코,
좀 큰 듯한 입,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보조개,
개방적이면서도 애교 썩인 말솜씨,
모든 것이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여,
그녀의 꽁무니를 따라 다닌 놈들이 부지기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인물덕을 보는지 졸업 후 재벌회사 비서실에서 근무를 하고,
사보에도 간혹 사진이 실리는 어디를 보나 틀림없는 미녀였던 것이다.
수많은 중매가 들어 왔지만 마음에 드는 총각이 없어 결혼을 미루어 왔는데,
앞에 앉은 우람한 박대포를 보자 영순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카페에는 조용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취미가 뭐예요?"
"등산, 음악 감상, 독서 뭐든지 다 합니다."
"어머! 음악감상을 좋아하시나요? 남자들은 음악을 싫어하는데..."
"기본은 다 해야지요. 허허허!!"
대포는 먹는 것도 잊은채 오물오물 먹고있는 영순이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고기 무슨 고긴지 아세요?"
스테이크를 칼로 자르며 영순이가 물었다.
"스테이크는 쇠고기로 만들잖아요. 탕수육은 돼지고기로 만들고..."
"지금 나오는 이 곡이 무슨 곡이냐? 말이 예요."
그때사 대포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만 무슨 곡인지 알 수가 없다.
"이건 비발디의 4계 중 봄 이예요. 감미롭지 않아요?"
"전 가벼운 음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웅장한 교향곡을 좋아하지요. 특히 베토벤을..."
"베토벤은 좋아하신다 구요?"
"네, 무척 좋아합니다."
스테이크를 먹던 영순이는 웨이터를 부르더니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조금 후 음악이 바뀌어 나왔다.
"그럼, 이 곡은 뭔지 아세요?"
교향곡 같은데, 들어보지도 못한 곡이라 대포는 머리만 걸쩍거렸다.
그러자, 영순은 웨이터를 다시 부르더니,
"지금 그 곡을 1악장부터 틀어주세요."
웨이터를 음악을 다시 틀었다.
바바바~~바!!!
웅장한 베토벤의 <운명>이 카페가 시끄럽도록 울려 퍼졌다.
"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대포는 아는 체를 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방금 것은 2악장이에요. 뭐든지 제대로 좀 하세요 뻥만 치지 말고..."
대포는 그래도 머리를 걸쩍거리며 허허 웃고 있었다.
초장부터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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