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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참붕의 토종붕어낚시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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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참붕 > 이그럭 저그럭 : 낚시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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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럭 저그럭
이번 휴가 때는 가족과 같이 어디로 가시렵니까? 벌써 다녀 오셨다구요?
바다, 산, 계곡으로, 텐트, 팬션, 민박, 리조트, 콘도, 호텔로 - 생각만 해도 참 기분 좋은 여름 휴가입니다.
아직 못 간 분들은 가족들을 꼬드겨서 기어이 저수지로 댐으로 데리고 갈 궁리를 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엉큼한 가장 같으니...휴가 데리고 가서 다들 잠 든 사이에 혼자 몰래 낚시하러 갈려구...
그런데요 우리 낚시꾼들 중에도 여름 휴가 반납하시고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또 현장에서 이 무덥고 긴 여름을 보내야 하는 분들의 수고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혹시 주위에 이런 낚시친구 계시면 몸보탕이라도 대접해 드리는 게 어떨까요? 예? 귀하도 그러시다구요? 좋은 데 가셔서 카드 긁어세요 ㅎㅎ.
시골에서 마당 한가운데 평상 위에 모두들 벌러덩 누워서 메케한 모깃불 연기 맡으면서 밤하늘 보면서 자녀들이랑 조카들에게 들려 줄 정겨운 옛날 얘기 하나쯤 미리 준비해 두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옛날 얘기 하나 자미나게 해 주면 자녀들은 물론이고 조카들이 그 여름밤을 평생토록 잊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할 시골댁이 없다구요? 고향이 어딘데요? 서울 특별시 종로구라구요? 쯧쯧. 그럼 이렇게 하세요. 조용한 휴양지에서 민박을 하시되 그 집 마당에 평상이 없으면 바닥에 자리 깔고 누울 수 있는지 살펴 보시거나, 산이라면 텐트 탁 쳐 놓고 주욱 누워서는...
바캉스 휴가 그거, 하기 나름 분위기 잡기 나름이라니까요.
'얘들아 내가 얘기 하나 할께' 하지 마시고 먼저 초를 띄우세요. '옛날 얘기 하나 해 줄까?' 모두들 재미없는 줄 뻔히 알면서 그 분위기 때문에 한번 해 보라고 할겁니다. 부인도 '왠일이야'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울 겁니다.
그러면 입을 한번 쩍 다시면서 '그러니까 그때가...' 하고 천천히 시작하세요. '옛날 옛적에 말이야...'는 구형입니다.
애들이 재미있는 대목에서 긴장을 하거든 진행을 좀 느리게 하세요. '그런데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하면서 재미를 돋우는 요령입니다.
그러면 얘기하다 보면 누워있던 애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다 귀하의 무릎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겁니다.
그 다음은 얘기 들으면서도 저희들끼리 서로 몸으로 밀면서 자리다툼이 일어납니다. 귀하의 무릎 앞으로 한 치라도 더 다가 앉으려고...
애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계속합니다. 사랑의 옛날 얘기를...
그날 밤 그 얘기를 아이들은 잊을래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죠.
제가 태어난 시골 마을에는 한참 걸어가면 큰 강이 하나 있었는데 국민학교 때는 방학 때마다 시골가서는 혼자서 그 강 가에 나가서 잘 놀았습니다.
그 강에는 한 쪽에만 둑이 있었는데 둑을 따라 사과 과수원이 줄 지어 있었고 강 건너편에는 둑이 안 보이고 탁 트인 풍경 그대로였습니다.
맑디맑은 여울물과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드넓고 눈부신 백사장,
그 백사장이 끝나는 곳, 아련하게 멀리 보이는 그 곳에는 하늘을 찌르듯이 높게 서있는 미류나무들...
어릴 때 너무나 높게 보였던 그 미류나무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그 강 가의 풍경과 미류나무들을 회상하면서 동화 하나를 올려 봤습니다.
자! 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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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참돌아! 이리 와 봐. 이렇게 하면 되냐? 한번 봐 줘"'
"아부지, 돌에 실을 잘못 감았어요. 그리구 이 돌이 아니라 참돌이라야 무거워서 좋단 말예요."
부자 간에 강여울에서 낚시를 하는데 강물이 흘러 지렁이가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자꾸 흘러가니 피라미 갈겨니 모래무지 할 것 없이 지렁이 쫓아가느라고 바늘을 물고 올릴 틈이 없다.
그런데 저만치 떨어져 있는 아들 녀석은 어떻게 하는지 잘도 잡아낸다. 녀석에게 한번 교습을 받았지만 어설픈 손재주에 경험마저 없으니 잘 되지 않는다.
노느니 낚시나 하자는 식이면 몰라도 이거 잡아서 저녁 찬거리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급해지니 더욱 어설프다.
오참붕은 3년째 가뭄이 들어 논농사 밭농사 다 시원찮아 마침내 지난 늦봄부터는 가족들 끼니 걱정까지 하게 되었고 그나마 꾸어 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손 부끄러워 그 짓도 못 한다.
오늘은 고기 잡아서 국거리나 해 볼 양으로 아들 녀석과 강가에 나섰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기를 대체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바늘은 대장간을 하는 건넌 마을 조카가 두드려서 만든 거에다 삼줄을 엮어다가 두엄 밑이나 밭에서 잡은 지렁이를 달았다. 긴 대나무 작대기에다 삼줄을 달고 찌라고는 아들이 오동나무 막대기를 불에 대충 그을린 거다. 요런 정도로 해도 고기들이 곧잘 오동나무 막대기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단다.
오참붕은 그런가보다 하고는 이제 열 살이 갓 넘은 아들을 데리고 아니 뒤따라서 강가에 나왔다.
해는 중천을 지나 배는 쪼르륵 고파오지만 집 나설 때 가지고온 주먹밥을 벌써 먹어 버리면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 저녁끼니는 삼십 리 떨어진 큰처남 댁에 간 마누라가 와봐야 한다.
빈손으로 오면 애들을 어찌 해야 할꼬.... 어찌 해야 할꼬....
그나마도 물고기라도 많이 잡혀주면 보리하고 쑥이나 넣고 푹 끓여서 여섯이서 한 끼라도 떼울 수 있을텐데 그게 지금까지는 잘 되지 않으니 속만 탄다.
"이 녀석아 천천히 말해 봐. 그러니께 이 새까만 돌을 요 돌로 갈아서 홈을 쪼-옥 내고 그 홈에다 삼줄을 감아라 이거냐?"
"그려 아부지. 홈을 잘 파야 해요, 물 속에서 삼줄이 벗겨지지 않게."
"근데 이 까만 돌은 안 달면 안되냐? 그 홈 파는 게 보통일 아니더라야."
"아부지도 참, 생각해 봐요. 고 돌을 여기에다 안 달면 지렁이가 물 위로 수영하고 다닐건데 고기가 그걸 어떻게 먹어요? "
"음, 그래 알았다. 고기가 잘 먹도록 고기 있는데까정 지렁이를 잘 갖다 주어라 이거구나."
말로 하면 쉽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반나절이 다 되도록 수도 없이 지렁이 단 바늘을 물에 던져 봤지만 허사였고 아까 단 지렁이가 이제는 누더기가 다 돼 버렸다.
"아부지, 저기 간땡이 아부지가 와요."
오참붕이가 흠칫 놀라면서 고함치는 아들을 바라본다.
"아니 이 늠아, 언제 내 옆에 왔냐? 난 또 저거서 낚시하는 줄만 알았는데.. 깜짝 놀랐네. 그런데 왜 그러냐? 음 저기 간땡이 아부지가 오누만."
간땡이... 간땡이는 겁이 없는 녀석이다. 간땡이가 너무 커서 배 밖에 나온 녀석이다. 그만큼 겁이 없는 이 녀석은 자기 키보다 조금이라도 높다하면 나무고 지붕이고 가리지 않고 일단 올라가고 본다. 머리에 하늘 귀신이 붙었는지 위만 쳐다보고는 기어 올라간다.
그러다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말 궁뎅이가 자기 키보다 높다고 그 전부터 벼르고 있던 터다. 그 날도 아침부터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아서 슥슥 문지르고는 기회만 보고 있었다. 말 궁뎅이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점프해서는 쏜살같이 말 등에 타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실행에 옮길 날이 온 것이다.
그 동안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았었다.
간땡이가 어릴 때부터 아부지가 '말을 씻겨라' '먹이 주어라' 하면서 시키면 그게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면서도 그 분풀이를 말에게 해댔다.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서 말 배를 발로 차고, 귀를 잡아 틀고, 코에다 지푸라기 쑤셔 넣고. 말총(말 꼬리털) 말아 쥐고 빙빙 돌고..
말이 망아지 때에 이 집에 쌀 닷말에 팔려 온 후로 간땡이에게 수 년간을 말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그런 말이 이제 제법 어른 말 비슷하게 컸다.
말이라고 노다지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간땡이가 가까이만 오면 코를 푸루루 풀면서 엉뎅이를 갖다 댄다. 가까이 오기만 하면 차 버리겠다는 경고표시다.
이렇게 되니 간땡이가 말 궁뎅이 쪽으로 튀어 오르는 것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간땡이의 오랜 훈련(?) 덕분에 간땡이네 말이 인근에서 가장 사나운 말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결투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OK목장이 아니고 간땡이네 집 마굿간 앞이다.
어른들이 밭일 나간 틈을 이용해서 마실 애들을 몽땅 관중으로 초빙해서는 행사를 결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간땡이의 영웅적인 결투 장면을 모든 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간땡이는 인근 마실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 질 것이고 그러면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행사이다.
짚신과 발이 서로 헤어지지 말라고 이미 새끼로 꽁꽁 묶어 논 후다.
너무 긴장해서 입안이 바싹 마르건만 그래도 폼이 중요하다. 그래도 없는 침을 손바닥에 퉤퉤 뱉고는 옷에다 한번 쓱쓱 비비고는 발을 꿀렸다.
간땡이의 몸이 붕 떠서 말 궁뗑이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그 찰나에 말 궁뎅이가 한번 실룩하더니 두 발이 위로 번쩍 들리면서 날아오는 간땡이의 얼굴을 향하여 정확하게 박혀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애들 아니 관중은 처음하고는 정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간땡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산더미처럼 쌓아 둔 보리 짚단 위에 조고만 물체 하나가 떨어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후 한달 만에 집 밖으로 나온 간땡이는 너무 변해 버렸다. 똥똥했던 몸은 반으로 줄어 있었고 눈꼬리는 처져 있고 얼굴은 핼슥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변한 것은 간땡이의 오른쪽 뺨이 움푹 들어간 것과 그 승리자 아니 승리마는 경마장이 아닌 장으로 팔려갔다는 것이다.
"아부지 간땡이 집에는 매일 고기국 끓여 먹는데요. 간땡이 아부지가 통발로 반나절만 잡으면 피라미랑 붕어새끼랑 엄청 잡아낸데요. 아부지도 저 통발 하나 만들어요. 낚시로는 몇 마리 못 잡아내요."
"통발이라... 보긴 자주 본다만 원래 재주가 매주라 농사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그걸로 고래를 잡는다해도 그림의 떡이다 이 녀석아."
이제는 오참붕도 아랫도리 두 쪽 알맹이가 얼얼해 온다. 삼복 더위에 땀이 펑펑 나야 하건만 강물이 얼마나 찬지 한참을 들어가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찬기를 식히고는 다시 들어가곤 해야 한다.
그러기를 한참을 했건만 망태기에 든 고기라고는 피라미 몇 마리에 메기 새끼같이 보이는거 한 마리가 모두 다다.
이러다간 오늘 저녁도 영락없이 굶는다. 나야 어떠랴, 어린 새끼들 배고프단 말도 못하고 배 꼬부라져 자는 모습 봐야 하는 게 그렇지...
그래, 간땡이 애비한테 사정 좀 해 볼까? 오늘 잡은 거 조금만 나눠 달라고. 가을해서 갚겠노라고 하고. 그래 그렇게라도 해 봐야지.
"어이, 자네는 고긴 안 잡고 여기 앉아서 뭘 하는가?"
"나는 자네처럼 아랫도리 적시면서 잡는 게 아니고 한번씩 가서 잡힌 고기 걷어만 주면 되네. 좀 잡았는가?"
"아니, 낚시라고는 해 보질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잡혀 줄 리 있나. 자네 그 좀 잡거든..."
말도 끝나기 전에 간땡이 애비가 먼저 선수를 친다.
"뭐 그리 많이 잡지도 못했어. 오늘은 장모님까지 건너와서는 며칠 묵겠다 그러시니 모자라서 어떻게 하나 생각 중일세."
오참붕은 말도 제대로 못 꺼내보고 포기해야 했다.
아들 녀석도 매 한가지다. 부자간에 다 합쳐도 손가락 만한 것들로 열 댓 마리 뿐이니 별 도리가 없다.
서산으로 기우뚱 넘어가는 해를 피해 미류나무 긴 그늘 속으로 부자는 숨었다.
하늘은 한없이 파랗고 한 조각의 구름은 돛단배 마냥 무심히 흐른다.
'이 삼복 더위에 저놈에 하늘이 왜 저렇게도 시퍼렇냐? 가을에는 어쩔려구...'
비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하늘을 아무리 원망해 봐야 하릴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원망의 한숨이 나온다.
어디 누구한테라도 째지게 못 사는 이 신세를 넘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부지. 저기 누가 오는데요."
고개를 들어 보니 왠 동자 둘이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행색이 둘다 나이는 어린데 이 푹푹 찌는 더위에도 긴 두루마기에다 갓에다... 걸친 행색이 양반집 자손 같다,
"여보시오. 우리는 한양으로 가던 중에 해가 지고 있어서 어디 하루밤 묵을 데를 찾고 있는데 어디로 가면 되겠소?"
"요 너머에 마실 하나가 있소이다. 거기들 가보시구려. 한 걸음에 갈 수 있을게요."
"우리 집에도 잘 수 있는데.... " 아들이 끼어 든다.
"이 녀석아 잠만 자면 되냐? 이 도련님들이 잡수시는 건 어떻거구?"
"아니 괜찮소. 먹는 거야 얼마나 먹겠소? 그 사례는 하리다. 우릴 좀 재워 주시오."
"불편들 하실텐데... 먹을 것도 없고. 이것 참. 이 녀석이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넷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있는 산 고개를 넘어 집에 왔다.
"주인장, 여기 몇 푼 되진 않지만..." 하고는 장 도령이 동전 몇 닢을 내 놓는데 오참붕의 형편으로는 오랜만에 보는 큰 돈이었다.
오참붕은 어림없이 안 받겠다고 했지만 두 도령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받아들고는 밖에서 쌀이랑 찬거리랑 장만해 와서는 두 도령을 잘 대접했다.
두 도령은 오참붕이 사는 마을에서 100여리 떨어진 꽤 큰 고을에 사는데 장 도령 부친은 한양에서 일찍이 참봉 벼슬을 하다가 낙향해서 살고 있었다.
한편 김 도령 부친은 장 참봉과는 죽마고우로서 그 고을의 진사로 있다가 김 도령 나이 일곱 살때 그만 세상을 떠났고 그 모친도 그 이듬 해에 세상을 떠나니 김 도령은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김 도령은 장 참봉 댁에서 키우게 되었다.
두 도령은 나이가 같고 둘 다 고을에서는 영리하고 글 잘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김 도령을 장 참봉 댁에서 키우기는 하지만 피붙이가 아니니 장 참봉 부인으로서는 자연히 친자식인 장 도령과는 차별을 하게 되었다.
글재주가 김 도령이 자기 자식보다 더 출중한데에 신경이 쓰였다. 더우기 서당 훈장은 간혹 장 도령 집에 와서는 김 도령 칭찬만 잔뜩 한다. 영리한 장 도령은 자신의 모친이 김 도령을 차별하는 것을 눈치는 챘지만 어린 나이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장 참봉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벼루가 없어진 것이다. 신라시대 때 장 참봉의 선조가 당나라에서 가져 온 이 벼루에는 용그림이 조각되어 있어서 용벼루라고 하는데 대대로 가보로 물려 내려 온 것인 만큼 도둑을 맞은 것은 그야말로 큰 일이었다.
관가의 민완 형사들이 오랜 기간 수사를 하고 유명한 점쟁이들과 스님들이 애를 썼지만 끝내 범인의 윤곽조차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이라고 급기야 장 참봉은 그 일로 몸져 눕자 온 집안은 우울과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열세 살 밖에 안된 김 도령도 그러한 집안 분위기에서 그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엉이 소리만 부엉부엉 들리는 이슥한 밤에 장 도령이 안뜰을 나와서 바깥채에 있는 김 도령 방으로 건너왔다. 자고 있는 김 도령을 깨웠다.
"어! 너 웬 일이야? 밤도 깊은데."
"엉 그래, 내 말 잘 들어. 그 벼루 말이야. 잃어버린 용벼루. 그거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있어. 내일 내가 아버님께 네가 그 벼루가 있는 데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 드릴테니 넌 말이야 아버님이 부르시거든 와서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는 채 하다가 꿈에 봤다면서 종이에다 내가 여기 써 주는 대로만 써. 그렇게만 하면 돼. 알았지? 꼭 그대로 해야 돼."
하고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횅하니 방문을 나서 가 버린다.
너무 갑작스럽고 황당한 얘기에 어안이 벙벙해진 김 도령은 그 얘기의 진위를 따져 보기 전에 내일 일이 걱정이 되어 밤새 잠을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장 도령이 장 참봉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드디어 김 도령이 안채로 올라오라는 장 참봉의 전갈이 왔다.
장 참봉 앞에 앉은 김 도령은 어쩔 줄 몰라 떨고만 있는데,
"그래 네가 그 벼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이냐? 허허, 그것 참 기이하도다. 그래 한번 알아 맞춰 보거라."
자, 이제 김 도령은 지난 밤에 장 도령이 시킨대로 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장 참봉에게 이실직고했다가는 자기를 도우려고 한 장 도령이 경을 치게 될 터이니 그럴 수도 없다.
만일 못 찾으면 장 도령에게는 고맙단 인사를 하고 이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벌벌 떨리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김 도령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체념을 하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천지신명께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던 김 도령은 눈을 뜨고는 천천히 붓을 들어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木下'
딱 두 자였다.
"목하 라-. 그게 무슨 뜻인고?"
장 참봉이 김 도령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 꿈에 이 두 글자가 보였습니다."
목하라는 글자를 두고 장 참봉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하고 쳤다.
"그래! 맞아. 도둑이 들킬까봐서 그 벼루를 미쳐 집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고 집 어디엔가 감춰 둘 수도 있지. 그래서 그 큰 벼루통이 마당에 내 팽개쳐져 있었지. 여봐라! 먼저 집 안의 모든 나무 밑을 파도록 하라. 서둘러라."
하인들이 집 안에 있는 나무 밑을 하나 둘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흘 밤낮을 팠지만 벼루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장 참봉은 크게 실망했다. 장 도령은 장 참봉에게 이르기를,
"아버님, 목하라 해서 비단 살아 있는 나무 밑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곳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소생의 생각으로는 나무로 만든 것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래 너의 말도 옳구나. 그러면 그런 것들을 모두 살펴보도록 하자. 나무 밑이라고 해서 살아있는 나무는 모두 파 봤으니... 그래 맞다. 집 안의 모든 마루도 나무가 아니더냐?"
그래서 이번에는 마루 밑으로 하인들을 들여보내 횃불로 샅샅이 살펴보게 했다.
그러기를 반나절 드디어 하인 하나가 사랑방 바깥 마루 밑에서 고함을 쳤다.
"찾았다! 찾았습니다요 마님. 여기 벼루가 있습니다. 용벼루가요... 어흐흐흐."
밖으로 가져 나온 벼루는 그 뚜껑이 용으로 조각된 그야말로 당나라 명품 그대로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장 참봉 부인은 김 도령을 안채의 장 도령의 옆방으로 옮기게 하고 장 참봉으로부터는 더욱 귀여움을 받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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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얘기가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겠죠. 요기까지는 서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입을 헤 벌리고는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애들은 얘기가 계속된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하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겁니다.
애들 반응이 어떻습니까?
애들이 얘기 듣다가 쿨쿨 자더라구요? 그럼 귀하가 얘기 실력이 없는게지요.
전번에 다른 얘기는 재미있어 했다구요?
그럼 제가 재미없게 했나? 그럼 2부는 더 재미있게 해 보겠습니다. 그 참 이상타.
짜 잔~~~~
막간에 퀴즈하나 하겠습니다.
두 도령은 곧 한양으로 가게 됩니다. 왜 한양으로 가는 걸까요?
(1) 과거시험 보러 (2) 이효리 사인 받으러 (3) 장 참봉의 심부름으로 (4) 63빌딩 수족관 보러 (5) 임금님께서 불러서
[예상 답풀이]
(1) 과거시험 보러
- 요거 정답 같이 보이지요? 옛날 얘기에 귀신 아니면 요게 자주 나오니까. 요거 나오면 응당 주인공은 장원급제 어사가 되고 그 다음 얘기는 들어보나마나 신나는 일이 일어나니께. 귀신하고 어사하고 같이 나오면 얘기는 더 죽여줘. 어사가 귀신하고 마구 쳇팅도 하고....
그러나 정답이 아니다. 나이가 너무 어려 응시자격이 없다. 열 세살 짜리가 암행어사가 되어 무거운 마패를 호주머니에 겨우 쑤셔 넣어가지고 남원 내려가서는 꿈에도 그리던 춘향이를 끌어안고... 뭐야 이거.
(2) 이효리 사인 받으러
- 최근에 표절관계로 골치 아픈데 사인해 줄 정신 있을까요?
(3) 장 참봉의 심부름으로
- 양반이 심부름을 시키려면 하인들을 시키지 어린 아들을 왜? 게다가 김 도령은 심부름하고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4) 63빌딩 수족관 보러
- 63빌딩 수족관에 있는 외국 고기보다 더 자연미 나는 어류 전시장이 마을 근처 강이랑 개울이랑 천지에 깔려 있는데 고생하고 돈 쓰고 뭐 하러 한양까지?
(5) 임금님께서 불러서
- 그 시절 임금님께서 뭐 하실 일이 없어서 시골 꼬마 애들을 불러요?
그럼 답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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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령에 대한 소문은 날개를 단 듯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퍼져 나가서 인제는 두 도령이 아주 유명인사가 되었다.
용한 점쟁이들이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어린아이들이 쪽집게 같이 찾아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웃 마을들은 물론이요, 멀리서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왜 몰려 오느냐고요?
귀하가 만일 아이폰을 지하철에서 잃어 버렸을 때 90만원 주고 새로 사실래요 아니면 돈 안받는 김 도령한테 한번 물어 보실래요?
그러나 막상 두 장본인은 죄책감에 쌓여 두문불출하고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평소에 명랑하기만 했던 장 도령도 풀이 죽어 있었다.
하인을 시켜 몰려든 사람들에게는 둘다 몸이 아프다고 하고 돌려보내기에 바빴다.
잃어버린 애를 찾아달라고 온 가족들이 가지 않고 몇날몇일을 담 밖에서 애걸하고 있었다.
"도련님 우리 애기 좀 찾아주세요. 제발 한번만 불쌍한 저희들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그 은혜는 이 댁 하인으로 있으면서 평생토록 갚겠습니다. 제발 도련님... 엉엉."
그럴수록 두 도령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아무리 친구를 위해 한 것이라도 어른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나중에는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둘은 너무나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 이상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기를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정말 더 큰일이 생기고 말았다.
착하고 영리하고 공부 잘하기로 온 고을에 칭찬이 자자했던 두 도령에게 엄청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으니...
어느 날 고을 원님이 친히 장 참봉을 방문했다. 방문한 목적은 임금님께서 두 도령을 한양에 있는 궁궐로 부르신다는 어명을 전하러 온 것이다.
한양에 있는 궁궐에서는 지난 달에 옥새(국새)를 도난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옥새란 임금님의 도장으로 지금으로 보면 대통령의 직인이다. 임금님이 나라의 문서에 이 옥새를 찍어야만 효력을 발생하는 것인 만큼 지극히 중요한 도장이다.
도둑놈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도록 궁궐 안팎으로 특전단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몇 겹으로 지키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옥새를 잃어 버렸으니 그저 새로 하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왕조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어서 임금님은 돌아가신 조상 대왕들에게 면목이 없어지고 왕궁을 지키는 모든 병사들이 크게 벌을 받게 되었다.
온 궁궐이 근심과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두 도령의 소문이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이것저것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곧바로 임금님의 명령이 내려졌다. 지금 즉시 두 도령을 왕궁으로 불러오라는 것이다.
고을 원님이 되돌아가고 나서 두 도령은 장 참봉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임금님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옥새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두 도령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부르신다니 가지 않을 수는 없고 가자니 그건 죽으러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니...
두 도령의 고민을 알리 없는 장 참봉은 많은 노자돈(용돈)을 챙겨주면서 길을 떠나 보냈다.
고을에서 한양까지는 부지런히 걸어서 열흘이나 걸리는 먼 길이었다.
한양이라 하면 롯데 어드벤처다 동대문 밀리오레다 아셈타워다 테크노마트도 빼 놓을 수가 없다. 전에는 말만 들어도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던 한양이건만 이제 정작 한양을 향해서 가자니 정말 싫었다.
둘은 서로 말도 않고 묵묵히 걷기만 해서 어느 듯 일주일이 지났다. 너무 고민이 되어서 잠은 길 가에 아무데서나 자고 변변히 챙겨 먹지도 못 하고 마냥 걸어서 여드레 째 되는 날 해가 지고 있을 무렵에 어느 강가에 도달했는데 거기에서 바로 오참붕 부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들은 오참붕은 두 도령의 초췌한 손을 잡고는 이 어린 도령들을 무어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줄줄 흘리고만 있었다.
그동안 너무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돼서 부모한테도 형제한테도 어느 누구한테도 차마 사실 그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던 두 도령은 설움과 두려움과 고민을 오래동안 마음 속에만 묻어 놓고 있었다.
이런 참에 두 도령은 오참붕이가 자기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오참붕의 품 속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오참붕의 아내와 애들도 같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그치고 오참붕은 두 도령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도련님들의 마음씀이 그러할진대 천지신명께서도 그리 무심치 않으실 겁니다. 틀림없이 두 도련님의 착한 마음을 하늘도 부처님도 아시고 도와 주실 겁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 나무...흑흑흑."
또 다시 셋은 다가올 큰 불행을 생각하고는 부둥켜 안고 울었다.
두 도령은 정말 오랜만에 부모와 같은 오참붕을 만났지만 그렇다고 오참붕이는 두 도령의 목숨을 구해주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잠자리야 모두들 앞마당에다 모깃불 피워놓고 이리저리 깔고 누우면 잠자리가 되고 방 두 개는 깨끗한 새 이불 꺼내다가 깔고 두 도령을 거기다 재웠다.
오참붕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어린 두 도령의 잠자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에구구, 이렇게도 잘 생긴 귀공자들이 이제 어떻게 될꼬... 안타까와라 안타까와라."
오참붕은 두 도령이 편히 잘 수 있도록 부채질을 해 주면서 밤새도록 부처님께 기도 드리고 또 드렸다.
마침내 아흐렛 날이 밝아왔다.
오참붕은 새벽 일찍 쌀밥을 정성껏 지어서 주먹밥을 만들고 비싸게 주고 겨우 구한 소금을 기름종이에 사서 두 도령의 봇짐에다 각각 넣어 놓았다.
오참붕 부자는 강가 나루터까지 배웅하러 따라 나섰다.
두 도령은 오참붕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배에 올랐다.
오참붕 부자는 배가 멀리 강 복판까지 흘러갈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두 도령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강을 건넌 두 도령은 강가를 따라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둘은 강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점심 때도 됐고 해서 주먹밥을 먹기 위해 키가 큰 미류나무 그늘 밑에 나란히 앉아서 땀을 닦았다.
강가에는 산 처럼 높이 자란 미루나무 두 그루가 마침 불어오는 강 바람에 한 쪽으로 기우뚱 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또 바람이 불어오면 기우뚱하고... 이러면서 두 나무가 가까이 붙어 있다보니 바람이 불 때마다 기우뚱하면서 두 나무의 줄기와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이그럭 저그럭...이그럭 저그럭...
이걸 보고 있던 명랑한 성격의 장 도령이 김 도령에게,
"우리 이렇게 슬픔에만 잠겨서 가지말고 오참붕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혹시 천지신명께서 우리를 도와줄지도 모르니 희망을 가지고 우리 저 나무처럼 하자꾸나.
내가 먼저 이그럭하면 네가 저그럭이라고 해. 그러면 걸어가면서 심심하지도 않고...
내가 먼저 한다. 이그럭..."
듣고 있던 김 도령은 천지신명이 도와 줄 리도 없으니 희망도 없고 그냥 갔으면 좋으련만 장 도령이 모처럼 하자고 하니 마지못해,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앞이 훤히 트인 강가로 두 도령은 이렇게 박자를 맞춰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김 도령은 속으로,
"저승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이 못난 소생을 용서하시고 도와주소서. 저를 위해 일을 꾸몄다가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있는 장 도령도 도와주소서, 아버님 어머님!"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저그럭..."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듯 한양 가까이까지 왔다.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박자는 그대로 였다. 오로지 그것만이 두려운 두 도령에게는 유일한 위안거리 였다.
그런데 한양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천재소년 쪽집게소년 장 도령과 김 도령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려고 소문을 듣고 달려나온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송파나루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두 도령이 지나갈 때마다 사인 받으려고 모여든 총각 처녀들이 이리 밀고 저리 밀고...오빠! 오빠!
마을 꼬마들은 두 도령을 따라 마을 끝까지 쫄쫄 따라왔다.
지나는 마을마다 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 그래. 저렇게 잘 생긴 도령들이니... 타고 난 천재지 천재야."
"여보게 저거 보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점잖은 자세도 하나 흩뜨려 지지도 않고... 양반 자제는 틀린다니까... 기특도 하지."
"그러니까 임금님께서 친히 부르시는게 아니겠는가? 저거 보게 걸어가면서도 공부를 외우면서 가지 않는가."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그러나 그 사람들이 두 도령의 심정을 어찌 알리요?
"아냐 이 사람아 두 도령이 뭔가 주문을 외우고 있잖은가? 역시 천재는 다르군."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빽빽하게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 틈에 스무 댓 살 정도 되는 두 청년이 잔뜩 겁먹은 얼굴들을 하고는 서로 귀엣말로 수군대고 있다.
"형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저 도령들이 이미 우리 이름을 알아냈단 말이야. 천재들이 아니라 귀신이야 귀신."
"그럼 우린 어떻게 한다냐 이거?"
그러고는 둘은 사람들 속에서 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두 도령은 마침내 한양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장 참봉과 친구 사이인 이조참판은 하인을 보내 두 도령을 자기 집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이조참판 댁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이제는 박자라도 맞추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게 되었다.
이조참판은 두 도령을 크게 칭찬하고 임금님을 뵙게 되면 어떻게 절을 해야하고 어떻게 대답을 드려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또 맛있는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두 도령은 이조참판에게 인사를 하고는 큰 방에 호사스런 이부자리를 깐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 잠이 오겠는가?
"이그럭, 저그럭, 이그럭, 저그럭 ..."
그런데, 두 도령이 있는 방의 바깥 마루 밑에는 아까 낮에 마을 사람들 틈에서 서로 소곤거리다가 사라진 두 청년이 숨어 있었다.
"아우야, 네 말이 맞구나. 저 도령들이 아직도 우리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우리가 여기 숨어 있는 것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잠 들기 전에 지금 들어가자꾸나."
그러고는 둘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와 두 도령이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두 도령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갑자기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란 두 도령은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두 청년은 다짜고짜,
"천재 도련님들, 저희 형제들의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비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자신들의 목숨도 오늘밤이 마지막인데 살려 달라니?
"두 도련님께 이실직고 해 올리겠습니다요. 제 이름이 '이그릇'이고 제 아우가 '저그릇'입니다.
저희 형제는 여기서 오십 리 떨어진 송파나루 남쪽에 있는 산골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여러 가지 그릇과 독(큰 항아리)을 짓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작년 장마에 뒷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부모님들과 아우 '요그릇'과 '조그릇'이 모두 흙더미에 묻혀 죽고 저희 형제만 살아 남았습니다.
온 세상이 장마에 휩쓸려 가버려서 어디 빌어먹을 데도 없고 해서 그만 임금님의 옥새를 훔치기로 맘 먹고 이런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아까 낮에 도련님들께서 저희들의 이름을 이미 알아내신 것을 알고 이렇게 목숨이라도 살려주십사고 사죄드리러 왔습니다요. 살려만 주십시오."
김 도령이 일이 어떻게 돼서 여기까지 이르렀는가를 대번에 알아채고는,
"그래, 알았다. 너희 둘을 용서해 줄테니 그 옥새가 어디 있는지만 말을 해라."
"예, 말씀드리고 말고요.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임금님이 주무시는 집 앞의 연못에다 빠뜨렸습니다요.
저희가 옥새를 훔쳐서 방문을 나섰는데 순찰을 도는 병사가 어둠 속에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아우가 당황해서 그만 연못에다..."
"그래, 알았다.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칠 생각은 하지 말라. 알았으니 이제 돌아가도록 하라."
이그릇과 저그릇 형제는 살려준다는 말에 절을 넙죽넙죽하면서 방문을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튿날 이조참판을 따라 두 도령은 대궐 안으로 들어가서 임금님 앞으로 갔다.
두 도령이 임금님께 큰 절을 네 번을 하고는 무릎꿇고 앉으니 임금님은 인자하신 얼굴로 두 도령을 크게 칭찬하시고 옥새를 빠른 시간 내에 찾도록 명하셨다.
김 도령은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눈을 뜨고는 붓을 들어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水下" (물 밑)
라고 써서는 임금님께 올렸다.
김 도령은 지난 밤 꿈에 이 글자를 봤다고 말씀드리자 임금님은 글자를 보시더니 공조판서에게 물었다.
"박 대감, 목하라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요?"
"예, 공조판서 아뢰옵니다. 소신이 확실히는 모르겠사오나 아마도 물이라면 저수지나 우물을 가르키고 그 바닥에 옥새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짐작하옵니다."
"음, 그래? 그렇다면 그 저수지나 우물이 대체 어디 있는 걸 말한단 말인가?"
김 도령이 나서서,
"김현동 아뢰옵니다. 저의 미천한 머리로 생각해 보건데 아마도 상감마마와 멀지 않은 곳이라 짐작되옵니다. 먼저 그런 곳부터 찾아 보심이 좋으리라 사려되옵니다."
"음, 그래. 너의 말이 그럴 듯 하구나. 여봐라 지체하지 말고 먼저 대궐 안에 있는 모든 연못과 우물의 물을 퍼내고 옥새를 찾도록 하라."
많은 군졸들이 동원되어서 사흘 밤낮 동안 모든 연못에 있는 물을 다 퍼냈건만 옥새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물을 퍼내지 않은 연못이 딱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임금님이 계시는 곳에 있는 연못이었는데 이 연못은 임금님의 허락이 없으면 물을 퍼낼 수가 없다.
이조참판이 지금까지 옥새를 찾지 못했음을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마지막 남은 그 연못의 물을 퍼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말씀드리니 임금님은 쾌히 승낙하셨다.
그 날 해질 무렵 그 연못의 물을 다 퍼내자 과연 옥새가 든 상자를 발견하고 임금님에게 바쳤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시면서 두 도령에게는 아주 귀한 선물을 주셨다.
두 도령은 임금님의 말씀대로 대궐에서 머물면서 그동안 구경하고 싶었던 곳을 모두 다녀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했다.
두 도령은 임금님께서 주신 큰 가마를 함께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참붕의 집으로 먼저 들러서 오참붕과 그 가족에게 임금님이 주신 귀한 선물을 나눠주었다.
고향에 돌아 온 두 도령은 고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장 참봉에게 무사히 다녀왔음을 인사드렸다.
며칠 후, 두 도령은 서로 상의한 후에 장 참봉에게 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모두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장참봉은 두 도령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방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더라도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면 하늘도 감동하여 도와 주실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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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들은 애들은 앞으로 거짓말할 때마다 이그럭저그럭을 생각할 겁니다.
이와 같이 자연사랑의 마음도 어릴 때부터 심어주면 훼손하라고 시켜도 아니할 것입니다.
긴 얘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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