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수열전 - 1편 칼을 갈다
그 저수지는 아담하게 생긴데다 물도 깨끗하고 낮은 산자락에 둘러 싸여 있어서 아늑하게 보였다.
상류에 수초가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니 바닥 경사가 조금 급한 것 같았고 그래서 맨바닥에서 떡밥낚시 하기가 좋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낚시점에서 가르쳐 준대로 상류와 중류의 중간 쯤 되는 자리에 낚시대 두 대를 펼치고는 곧장 떡밥을 갰다.
초봄이라서 아직 수온이 차므로 오늘은 신장떡밥으로는 입질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글루텐에다 어분을 조금 섞어서 좀 단단하게 개어서 달고 물에 잘 풀어지도록 어분과 찐버거를 섞어 푸설푸설하게 개서 밑밥으로 던져 주었다. 지렁이를 달지 않으니 동물성 미끼 대용으로 어분을 택했다.
낚시 준비를 마치니 시간은 이럭저럭 점심 시간이 다 돼 간다. 배가 슬슬 고파서 라면을 삶아서는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고띵 둘이가 뒤에 와서는 고기 좀 잡았냐고 묻는다.
이제 방금 대를 담갔노라고 했더니 이 저수지에는 잔챙이 큰챙이 골고루 잘 나온단다. 그리고는 내가 라면을 먹고 있는 모양을 보고는 자기들이 가져온 김치를 좀 주겠노라고 한다.
그저 근성으로 고맙다고 했더니 비닐봉투에 든 김장김치 포기를 꺼내서는 칼로 반을 잘라 준다. 이외의 친절에 다시 한번 더 고맙다고 하고는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되레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그렇지, 외지에서 온 내가 먼저 신고를 하는게 순서였다.
그 고띵들은 바로 저수지 옆의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란다.
고띵들은 아랫 마을에 사는 친구하고 내기 낚시를 앞두고 연습 낚시를 하러 왔단다.
이왕이면 나하고 같이 하자고 했더니 애들은 좋다고 좀 떨어진 자리에 대를 걸치고는 지렁이를 달아서 던졌다.
"친구하고 내기 낚시라니 뭘 내기를 했냐?"
"내기 낚시라기 보다 전번 낚시에서 진 걸 복수하려고요."
"잉? 복수라니?" 
"걔네 집은 과수원을 하는데요 젤 부자예요. 걔네 아빠가 낚시대를 하나 사 줬다고 우리한테 자랑을 하는데요 엄청 좋은 거 였어요. 우리 낚시대는 후진건데... 그래서 그 낚시대가 넘 탐이 나서 그 낚시대를 걸고 내기 낚시를 하자니까 걔는 편지 다섯 번 갖다주면 하겠다고 했어요."
고띵들은 본래 말이 짧다. 내가 물었다.
"편지 다섯 번이라니?"
"걔가 무지 좋아하는 여자애가 울 마을에 살거던요. 걔가 여자애를 만나자고 하지만 여자애는 걔가 싫다고 만나 주지를 않았어요. 편지라도 전하려고 했지만 여자애가 받지를 않는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낚시 시합을 해서 지면 편지를 다섯 번만 여자애에게 전해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낚시해서 졌구먼."
"녜. 엄청 깨졌어요. 걔는 대가 좋으니까 우리와는 껨이 안됐어요."
"누가 이기기로 했는데?"
"붕어로만 많이만 잡으면 이기는 걸로 했어요."
"하루종일 해서?"
"아뇨. 세 시간요."
"그런데요 저는 다섯 마리 잡았는데요 걔는 스무 마리나 잡았어요. 어휴~ 그 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져요 헤헤."
"내기에 졌으니까 편지를 열심히 갖다 줬겠구나. 하하하!."
"아뇨."
"잉? 그럼 내기에 지고도 약속을 안 지킨거냐?" 
"아뇨 그게 아니구요 걔가 주는 편지를 여자애에게 갖다 줬더니 편지는 읽어보지도 않고 편지 주인이 누군지를 알고는 '니네들 이딴 심부름하면 마을에 소문 다 낸다. 알았지? 글구 한번만 더 걔 편지 가져오면 울 오빠한테 일러줄거야. 빙신들 흥..' 하는거예요.."
"큰일 났구먼. 약속은 해 놨으니... 쯧쯧쯧 그래서?"
"그래서 걔한테는 여자애에게 전해 줬다고 거짓말 하고는 계속 편지를 받아서는 찢어 내버렸어요. 무지 쪽 팔렸어요. 여자애가 오빠에게 일러 주는 날에는 우린 바로 죽음이어요. 걔 오빠가 귀가 어두워서요 군대 안가고 면사무소 방위하는데요 학교 다닐 때 복싱했어요. 한방만 맞아도 난 그냥..."
"이번에도 지면 어떻게 할려구?"
"또 편지 찢어 버리면 돼요. 그 보다 우리가 걔를 이기기가 어려워서 오늘 연습하러 온거예요."
시골 애들이라 순진하기 짝이 없다.
"너희 둘이 친구냐?"
"아뇨 이 형은요 우리 사촌 형인데요. 나보다 두 살 많아요. 전 고2고요 형은 고3요."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지만 동생 녀석이 보통 똑똑한 게 아니다.
내가 던진 미끼에 붕어가 붙었는지 잔챙이가 몇 마리 잡힌다. 잡자말자 물에 다시 던져주니 좋다고 내뺀다.
그러나 그 아이들 찌는 요지부동이다. 내가 잡은 붕어가 열 댓 마리가 될 때까지 아이들 찌는 말뚝이다.
내 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을 때마다 조금 떨어져 앉은 애들은 입을 벌리고는 감탄만 한다.
"와! 형 저것 봐. 아저씨 찌가... 우와! 신기하다. 그치 응?"
"응 그래. 찌가 저렇게 많이 올라오는 건 첨 봤다. 어떤 때는 찌가 다 올라와서 넘어져"
잔챙이가 글루텐을 물고는 가볍게 맞춘 찌를 치켜 올리는 걸 보고는 신기하다고 보고 있다.
잔챙이가 너무 성가시게 해서 찌맞춤도 바꾸고 떡밥도 바꾸려고 할 쯤에 똑똑이가 와서는,
"아저씨, 찌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올려요?"
애들은 복수전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지상목표였기 때문에 찌가 많이 올라오는 것보다 내가 붕어를 연거푸 잡아내는 방법이 더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려니 뭣해서 말을 돌려서 찌 올림을 묻는 것이었다.
"응? 그래. 내 커피 한 잔 끓여 마시고 가르쳐 줄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서웠다.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한 녀석은 내가 가져온 비닐 봉지를 뒤져서는 커피다 바나다 주전자다 몽땅 꺼집어 내고 한 녀석은 자리를 펴서는 자리에 남은 흙자국을 손으로 긁어서는 입으로 훅훅 불어서 털어낸다.
두 녀석이 일사불란하게 번개에 콩 튀기듯 커피를 타서는 내 앞에다 대령했다(?).
"아저씨 커피 여기요. 너무 뜨거워요 불어서 드세요."
"응. 너희들도 같이 한잔 하자구나."
"아 아녜요. 저희들은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아저씨 드세요."
내 앞에 서서는 둘다 완존 차렷 자세다. '각하가 마시고 계시는 커피를 저희도 마신다는 건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허허 참...
그만큼 애들은 편지 전해 준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여자애 한테서 받은 모욕감으로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결연한 의지가 넘쳐서 저수지 물도 출렁이게 할 것 같다.
낚시대는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걸 물려 받았으니 어지간히 오래 된 것이었다. 글로스로드 두칸반 대이니 과수원집 애의 카본 신형 대를 보고는 탐이 나는 건 당연했다.
"붕어가 사람에게 낚시대가 얼마짜리냐고 물어보고 미끼를 무는건 아니지?"
"녜."
"대가 비싼 거라면 물론 좋겠지. 그러나 좀 무겁고 투박해도 고기를 잘 잡으려면 중요한건 찌와 찌맞춤, 그리고 바늘과 미끼에 달려 있단다. 내가 그걸 다 맞춰 줄테니 잘 보고 배워서 한번 해봐라."
"녜. 아저씨."
"녜. 아저씨. 고맙습니다."
바싹 다가 앉는다. 그리고는 내가 손을 내밀기가 무섭게 니퍼, 낚시줄... 차례대로 쥐어준다.
"너희들이 쓰는 찌는 오래 전에 써던 튜브찌여서 지금은 쓰지 않는단다. 내가 두 개 줄테니 이제부터는 이걸 써보렴."
30년전에 쓰던 100원 짜리 튜브찌를 빼고 찌통에서 50cm 짜리 떡밥용 오뚜기 찌를 꺼내서 꽂았다.
붕어 6호 바늘을 케블라 2호줄로 맸다. 
씨알에 관계없이 많이만 잡으면 된다니까 찌를 가볍게 맞췄다. 바늘만 달지 않은 채로 찌톱 한 마디가 나오도록 정밀하게 맞추어서는 바늘을 달았다.
애들은 숨도 안 쉬고 내 손을 따라 눈을 재빨리 돌리면서 열심히 배우려고 애썼다.
찌맞춤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낚시를 심심풀이 땅콩삼아 하는 초보자에게 봉돌이 바닥에 닿느니 어떠니 설명해 본들 괜히 낚시란 어려운 것이란 선입감만 주기 십상이다. 지금 재미있게 하고 있으면 그게 제일이다.
"이 글루텐은 바늘에 달아서는 코딱지 말듯이 바늘에다 말아주면 되고 이 밑밥은 바늘에 꼭꼭 다져서 달지 말고 윗부분만 힘주어서 다져주고 아랫부분은 그대로 두면 물에 잘 풀린단다. 자 이제 너희 자리에 가서 한번 해 보아라."
그 날 해 질녁까지 두 애는 붕어를 무척 많이 잡았다. 찌가 스물스물 올라 오는 걸 챌 때마다
세 치에서 다섯 치까지의 씨알이 연거푸 낚여 올라왔다.
그런데 똑똑이가 와서는,
"아저씨 해 주신대로 하니까 엄청 잘 잡혀요. 그런데요 아저씨 찌는 다 올려서는 벌러덩 넘어지는데 우리 찌는 세 마디쯤 올렸다가 다시 내려가요."
좀 귀찮아서 단봉으로 맞춰 줬더니 벌러덩은 언제 봤는지 커피를 또 끓여 왔다.
결론은 찌가 벌러덩 넘어가게 만들어 달라는 얘기다.
그래 이왕 해 줄꺼 몽땅 해 주자꾸나.
해는 어느듯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에다 붉은 색칠을 해대고 있었다
(1부 꺼~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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