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梁 上 君 子 -
양상군자는 들보위의 군자란 뜻으로
후한서 진식전에 나오는 도둑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도둑질이라 하는데
제 것 아닌 것을 탐하는 것을 도둑으로 통칭한다면
동물은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제 것 아닌 것을 탐하지만
인간이 남의 것을 탐하면 그것이 곧 도둑이요,
동물과 같은 격으로 격하되어 당연하다.
IMF 시절, 친한 친구 셋이서 충주호 조정지 댐으로
이박 삼 일간 밤낚시를 떠났다.
장마철이라 첫 장마의 호황을 그리며 낚시터에 도착해
대를 펴고 일찍이 저녁식사도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케미컬라이트를 꺽고
낚시를 시작했다.
어떻게 호황소식을 들었는지 전국에서 모여든 낚시인들이
유료낚시터 낚시대회 하듯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촘촘히 자리 잡고
장대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누구하나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입질은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낚시터에서는 진한 동료의식으로
음식이나 커피도 나누고 소주잔도 기울이는 것도
낚시의 재미라 모처럼 뿌듯함으로 출발할 때의 번거로움이나
장대비 속에서 낚시 준비로 인한 어려움쯤은
능히 감내할 수 있었다.
새벽 2시. 파라솔에 우의로 완전 무장했지만
틈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물기에 한기도 들고
출출한 판에 밤참도 생각나 도로변에 주차한 승합차에서
라면도 끓이고 소주도 한잔 걸치고 자리에 돌아오니
아뿔싸! 파라솔과 받침대만 남아있고
낚시가방과 펼쳐 놓은 낚싯대도 보이질 않는다.
일부는 낚시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많은 낚시인들이
차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
그 시간에 양상군자가 다녀간 것이다.
30년 이상의 낚시 중 처음으로 당한 것이다.
그 후로 낚시터에서 낚시장비의 도난 사고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옛말에 훔친 사람보다 잃어버린 사람이
자칫하면 더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후
불특정다수를 의심하게 되고
어쩌다 낚시도중 자리를 비우려면
주변의 모두가 미심쩍어 보이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낚시터에 좀도둑이 극성을 부린다.
밤낚시에 잠시 눈이라도 붙일라치면 어김없이 낚시가방이 사라지고,
조심한다고 가방은 챙기고 새벽에 다시 낚시를 시작하려면
번거로워서 설치한 낚싯대 놔두고 한숨 자고 나오면
원줄 잘라버리고 낚싯대는 사라지고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황당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도 몰래 물건만 훔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적하고 외진 곳에서 혼자 밤낚시를 즐기다
소지품에 차량까지 강탈당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밤낚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낚시문화이고
조용하고 정적이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할 수 있는
정취가 있어 매력이 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여
결정해야 될 그런 경우가 되어 버렸다.
주변에 이름만 대면 아는,
낚시점도 하면서 잡지에 현장을 중심으로 많은 글도 쓰고
낚시방송에도 출연해 야전사령관이라는 닉네임도 가지고 있는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십대 중반의 낚시인이 승합차를 털린 일이 있다.
낚시점 옆에 주차하고 24시간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라
생각도 하지 안했는데 허를 찔린 것이다.
가격은 둘째 치고 손에 익어 애착이 가는 분신 같은 낚시도구를
몽땅 잃어버렸으니 그 서운함이 어떠했겠는가.
순찰차가 오고 감식반이 뜨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예전에 비해 붕어조황이 살아나고
특히 떡붕어 낚시는 절정의 해였다.
처음 떡붕어가 방류된 파주의 발랑지에서
덕우지, 어천지, 기천지, 두메지, 만정지, 반제지, 금광지, 마둔지,
터가 세기로 소문난 충주의 중산지가 연일 대물을 쏟아내고
서천의 흥림지, 대청댐이 가세하더니 청라지가 저력을 보이고
급기야 남도의 금사지에서도 호황이 이어졌다.
덩달아 신바람이 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댐 낚시도 위쪽 파로호부터 충주, 대청호 등이 어김없이
오름 수위 특수를 보였다.
호황이 뜸 한 듯 하더니 온양의 송악지와 고개 넘어
대술의 송석지, 방산지가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붕어낚시 호황과 함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있으니
바로 낚시터 좀도둑들이다.
요즘 낚시장비가 예전과 달라 상당히 고가이다.
그런데다 경제전반이 어렵다보니 늘어나는 건 도둑이요
각박해지는 건 인심이다.
8월18일, 목요일, 서해의 부시리, 참돔낚시에 참패를 당하고
조황이 좋다는 대술의 송석지를 찾았다.
밤낚시에 도난 사고가 많고, 심지어 낮에 잠간 자리를 비워도
낚시용품이 없어지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먼저 와 있던 낚시인들에게 누누이 들은 터라
어둠이 내려서 장비를 걷어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제방 옆 이차선도로 공터에 차를 주차한 후
낚시 시작, 주변에는 일곱 대의 다른 낚시인들의 차량도
주차되어 있었다.
낮 1시에서 2시 사이,
멀리 낚시인들이 보이고 차량이 수시로 왕래하는
이차선 도로에서 유리를 부수고 차안의 모든 것,
바다, 민물, 낚시도구는 물론이요 신분증, 면허증, 여권,
심지어 가족사진에 기념으로 받은 중국, 대만, 일본 낚시인들의
서명이 들어있는 찌와 낚시용품 등 아예 깨끗이 청소를 하고
기념으로 머리통만한 유리를 부순 돌덩이와 무수한 유리 파편만 남겨 놓았다.
돌덩이를 보는 순간 섬뜩함에 소름이 돋았다.
한 밤, 차안에서 잠 잘 때 저 돌덩이가 날아들었다면 -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가 어두우면 도둑이 설친다.
얼마 전에 명분은 그럴듯하게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라며
담배 값 인상하니 담배를 취급하는 동네 구멍가게 털이가
기승을 부렸었다.
값 그 자체가 세금덩어리인데 담배 피워 세금내고
도둑 설쳐대고 백성만 죽을 맛이다.
경제사정과 도둑과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오죽하면 도둑질을 하겠느냐 동정론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안 들키면 도둑이요, 들키면 강도로 변한다.
허긴 낚시장비를 터는 것은 애교일는지도 모른다.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한 윗분들은 몇 십억, 몇 백억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둑질해도 끄떡없다.
국민은 다 아는데도 끄떡없고
어쩌다 재수 없어 문제가 돼 봐야 들어가서 휴식 좀 취하면
어떤 이유를 붙이던 사면인데 신경 쓸 일이 없다.
백주에 차 유리를 부수고 처분해봐야 속된말로
똥값인 장물을 터느라고 얼마나 조마조마 가슴 졸이고
피가 마르는 고통을 느꼈을까?
도둑님과 도둑놈은 간덩이 크기도 다르지만
격에도 차이가 있고 금액에도 차이가 있다.
도둑님이건 도둑놈이건 크든 작든 분명한 것은
남의 것을 탐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양상군자!
너희는 이제부터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이다.
2005년 8월 溪流 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