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래 골의 육두문자 -
멀리 가물가물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깊고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봉우리를 먹구름이 덮는가 싶더니
파로호를 끼고 앉은 상무룡리 전체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침이 밝아오는가 했는데 다시 밤으로 가는 것 같다.
부어터진 얼굴로 오기를 부리던 하늘이 기어이
심술보를 터트린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건 말건 우선은 붕어얼굴이 그리운지라
전체 수심 4미터, 시작은 2미터 권에 찌를 맞추고
부지런히 집어제를 투척하니 드디어 그리 긴 시간이지나지 않아
찌에 움직임이 오고 당찬 몸부림 끝에 뜰채에 담긴 건
체고가 유난히 높아 길이나 소위 말하는 빵이
거의 같아 보이는 30cm 전후의 파로호 첫 수, 떡붕어다.
한반도 전체를 녹이기라도 하듯 무섭도록
맹위를 떨치는 폭염도 이곳은 비켜가는 듯 골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과 비가 서늘한데 다행히 등 뒤에서 불어
원활한 채비 투척을 도와주고 있고 특성상 군집을 이루며
모여들기 시작한 떡붕어는 미끼를 물고 채비를 내려주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대를 드리운 낚시인의
욕심은 그보다 더한지라 처음 이곳을 목적으로 할 때는
혹 붕어 입질이 없으면 배스라도 낚아 보겠다고
루엇대에 웜까지 준비하는 보험까지 든 주제에
정작 두어 시간 동안 삼 십 여 마리의 붕어 손맛이면
만족 할만도 하련만 월척 급 이상 사짜의 새로운 꿈을 꾸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처음 도착할 때부터 잔뜩 심통을 부리고 있던 날씨가
바쁜 마음으로 낚싯대 펼 칠 짬을 주더니 사나운 바람과 함께
시작된 빗줄기는 미처 주위를 정리할 여유도 주지 않고
붕어 입질이 시작됨과 동시에 내리기 시작한다.
반나절에 80미리 이상이면 호우주의보 상황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호우경보 발령도 시간문제다.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쏟아 붇는다.
집어가 되어 번호표 받고 순서를 기다리다 저 죽는 줄 모르는
우매한 붕어들이 인간이 재미있어라 하는 취미생활에
죽어라 매달리는 상황이 일순 멈추며 이곳에 지금 존재하는 건
정적 속에 수면을 때리는 빗소리뿐이다.
중층낚시니 당연히 미끼가 풀리면 찌가 슬그머니 올라 와야 하는데
슬쩍슬쩍 유인동작과 함께 액션을 주는데도
복원이 되지 않는 건 찌톱에 쉴 사이 없이 쏟아 붙는
빗줄기 때문인데 중독된 낚시 병에 여름휴가를 겸해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가 꼼짝없이 텐트 속에 갇혀서
비가 개이길 기다리는 저들의 안타까움을 모르는지
하늘을 뒤 덮은 먹장구름은 개일 줄을 모르고
슬슬 차오르는 수위는 애써 돌무더기 무너져 내리는
직 벽에 다져 놓은 낚시자리를 옮겨야 할 상황이다.
“어떤 자발 맞은 염병에 땀 못 낼 인간이
이 따위로 쓰레기를 늘어놓은 겨”
“물 불어나는 거 뻔히 알면서 비설거지 안하고
텐트에 처박힌 인간들이나 쪼그리고 않아
낚싯대 물속에 처넣어 놓고 있는 인간들,
빨랑 나와서 주변의 쓰레기 치우지 않으면
굴삭기로 나가지 못하게 길 모두 파 버릴 겨”
누굴 특별히 지칭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고도 못할 묘한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거침없이
뱉어 낼 수 있는 건 하루아침에 이룬 내공이 아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쇳소리가 묻어나는 독설이
등 뒤에서 들여온다.
작달막한 키에 작고 매서운 눈초리,
한마디로 카리스마로 도배한 얼굴이
때마침 고개를 돌린 내 눈빛과 마주쳤다.
한 때 영등포에서 유명한 조폭조직의 간부였다고도 하고
무시무시한 사건에 연류 돼 징역을 십 수 년 살다 온
전과자라고 수근 대는 소리를 들은 터라 호기심과 함께
눈싸움이 시작됐다.
파로호의 다래 골 산장.
이름만 들으면 정감 있고 정취가 묻어나는
고상하고 멋진 자연속의 한편의 그림 같은 풍경이 연상된다.
생각한대로 그 예상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지만
진입하는 과정이 장난이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월명리에서 배를 이용하면 되지만
바리바리 싸 온 낚시장비며 캠핑 장비를 일일이 차에서 선착장으로,
다시 배로, 포인트로 옮기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힘이 들기에
자동차로 그대로 목적지까지 진입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고
그 요건의 충족되는 곳, 바로 다래 골 산장이다.
오직 한 채의 집이 있는 곳. 산 속 임도를 따라
십 여분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오르내리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까마득한 저 아래 파로호의 푸른 수면이 보이고
멀리 건너편 상무룡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래 골 바로 건너편, 이승만 대통령 별장 터엔
짙푸른 들풀만 가득한데 50%에 미치지 못하는 저수율이
한여름 더위에 짧은 배꼽티를 입고 속살을 들어낸
아가씨들 패션처럼 벌건 황토 빛을 보여주고 있다.
건너편이나 눈 아래 펼쳐진 발아래 오늘의 목적지나
수면 경계선을 따라 점점이 박혀있는 원색의 파라솔로 미루어
낚시인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멀고도 험한 이 골짜기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연결되고
전기가 들어왔다는 것은 산장 쥔장의 집념과 끈기,
노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x구멍을 확 찢어 버려야지, 잡기만 해봐라”
“조금만 기어 올라오면 우리 집 화장실도 있는데
아무데나 퍼질러 싸 놓고 그 옆에서 밥 처먹고”
“어떤 x새끼가 라면 처먹고 여기다 쏟아놨어?”
“낚시를 끊던지 담배를 끊던지 담배꽁초는 쓰레기 아닌가!
왜 여기저기 버리고 지랄이야”
애써 외면하며 대꾸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이제는 아예
총론으로 하던 육두문자를 각론으로 세분화해 쏟아 내기 시작한다.
남녀의 중요 신체부위가 그렇게 푸짐하게 험한 단어로
각색되고 표현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낚시자리를 이곳저곳 둘러보고 담배는 피는데 옆에 재떨이로 쓸
종이컵이나 빈 캔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쏟아지는 빗줄기가 무색할 정도로 사정없이 생전 듣지 못하던
육두문자가 난무하는데도 누구하나 대꾸 하는 사람도 없는 건
기에 질렸거나 이미 만성이 되었거나 인데 분위기상
모두가 겁을 먹고 있는 것이 빤해 보였다.
거기나 내용을 살펴보면 백번 지당한 말인지라 대꾸는커녕
애써 시선도 피하며 딴청만 피우고 찌만 응시하고 있다.
밸도 꼴리고 눈꼴도 사납고 욱하는 성질에 아내의 말을 빌리면
독재자에 한 성질 하는 내가 평소 같으면
프라이드고 케이원이고 죽자 살자 이판사판,
한판 붙어도 진즉 했을 터인데 기를 펴지 못하는 건
주변의 분위기도 한 몫 했지만 솔직히 이런 호황이 있는 곳을
버려두고 떠난다는 것, 아니 쫓겨난다는 것은
명색이 내가 낚시인인데 자존심과 오기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욱하는 성질을 애써 다잡으며 삼일간의 여정이니
눈도장도 찍고 교분도 쌓아 보려고 비굴한 미소를 띤 얼굴로
참자! 참자! 되 뇌이며 아첨어린 시도를 한다.
“아이고! 사장님 성격 한번 호탕 하시네”
“내려오다 보니까 토종닭이 토실토실하던데
백숙이나 닭볶음탕 좀 될까요?”
“안 됩니다. 못해줘요”
어멈! 아니 이곳에서 산장에 민박하고 보트 운행하고
토종닭을 기르는데 사람 차별하나 안 된다니
낚시고 뭐고 때려 치고 그래 많이 참았다,
한번 해보자 가부좌를 풀면서 대좌에서 일어서는데
생각지 않았던 맞대응에 놀라서일까 아니면 속사포처럼
쏟아 버린 욕설이 무안해서인지 보트를 몰고 휑하니
폭우를 뚫고 별장 터로 가 버린다.
그가 진짜로 조폭이었는지 당신 말대로 파로호 산적인지는
인연이 맺어진 그 날 이후 물어 보지도 않았고 그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삶에 사연이 있어 이곳에 정착한
그의 진심만은 난 익히 알고 있다.
얼굴 더럽고 입 더러운 사람치고 성질 더러운 사람 없다더니
다래 골에서의 삼일은 체험으로 느낀 생생한 교훈이 되었다.
극성이, 이제는 정겹게 생각되는 육두문자가
쓰레기 하나 없는 다래 골을 지키는 방법이었음을....
아내가 다리인대가 파열되어 백숙을 해 주지 못함을
못내 아쉽고 미안해하며 독설 사이로 살짝 스치는
작은 미소가 얼마나 순수한지를.....
다래 골에 물이 차오르고 오름 수위가 시작되면
지체 없이 달려가 다시 한 번 그의 독설을 듣고 싶다
2009, 8월 溪流 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