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의 새해 계획 -
언제였던가!
모든 걸 접어놓고 한가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것이....
사계절을 강으로 바다로 저수지와 갯바위로 쏘다니던
역마살이 낀 인생이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장장 이 십여 일간의 일정이니 통상적인 상황 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딸아이의 결혼식이 예정돼 있고
사실 그것이 목적이었으니 여행은 덤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인 출혈을 감수하고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건
그 계획의 중심에 낚시를 두고,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기대감에 들떠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잘 나가는 직장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더 늦기 전에 다하지 못한 공부를 하겠다며
미국으로 훌쩍 떠난 딸아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에 학업에 지칠 만도 하련만
꿋꿋하게 이겨내고 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한데
아빠로서 제대로 뒷받침 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이 아리하게 시려온다.
좁고 불편한 일반석에서 13시간을 시달리며
낚시장비는 아무리 고가라도 지름신이 강령하면 어떻게든 구입하고
낚시경비는 얼마라도 지출하면서 가고 싶은 곳은 가야만 직성이 풀리면서
간만에 집사람과 아들 며느리까지 같이 하는 여행길에
이 무슨 궁색을 떨고 있는지 자책을 느끼면서도
돈 벌어서 퍼스트나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해야지 너스레를 떨며
LA공항에 마중 나온 딸아이와 예비사위를 보는 순간
시차로 인한 피로나 밤을 꼬박 새운 후유증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결혼식까지는 아직 몇 일간의 여유가 있어
롱비치로 달려가 파도를 가르고 멋진 캐스팅으로
이름 모를 바다 어종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하고 싶은데
사전에 협의도 없이 짜 놓은 딸아이의 스케줄을 거절 할 수가 없어
공항에서부터 내 의도와는 상반된 관광코스를 순회하게 되었다.
디즈니랜드, 헐리웃,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을 돌아
딸아이가 보금자리를 꾸밀 켈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도착하니
몸은 지쳐 천근만근이지만 들뜬 마음에 정신은 더 맑아진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다양한 어종과의 상면은 좀 미루면 어떠냐고 애써 위안하며
아쉬움을 달래는데 결국 낚시는 그 긴 일정동안
바램과는 달리 단 한번으로 그치고 말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방학이면
늘 캠핑과 야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며
실로 오랜만의 오붓한 가족여행에 모두가 하나같이 즐거운 마음이고
본능적인 낚시에 대한 열망에 비례한 아쉬움도 잊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즐거워하며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왜 진즉에
자주 하지 못했을까!
내 계획을 접고 일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래 이번엔 가족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자.
모든 걸 잊고 보고 즐기고 느끼자.
집에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철저히 가족을 위해 봉사하자.
결혼식 전날과 당일, 이틀을 제외한 전 일정을 여행으로 잡았다.
미친 듯 정신없이 쏘다녔다.
모하비 사막을 횡단하여 사막에 건설한
도박도시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의 대명사는 카지노.
우수개 소리로 가지마! 하지마, 라 한다는데
그래도 이곳까지 왔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삼일 밤 오백 불이라는 거금(?)을 날리며 요행수를 노렸으나
결과는 뻔할 뻔자다.
이곳도 갈수록 카지노사업은 불황인데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사업의 요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왕 마음먹고 나선 길.
주변의 관광지를 하나하나 찾아 나섰다.
그랜드 캐년, 후버댐, 브라이언 캐년, 자이언 캐년.
텍사스주로 가는 길에 몰몬교도들이 건설해 모여 살고 있는
사막도시 모하비에서 줄지은 캠핑카가 내 발목을 잡는다.
애써 잊고 있는데 작심하고 외면하고 있는데
본능적인 낚시인의 유전인자가 갈증을 느끼게 한다.
광활한 대지. 척박함. 막힘없는 도로,
다운타운 외에는 어딜 가도 한적한 모습.
허긴 LA 주 하나가 한반도의 네 배 정도니 사막 한 귀퉁이만 떼어다
우리나라에 붙여 놓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 옥토로 바꾸고
빌딩숲을 건설 할 텐데 아쉬운 마음만 든다.
생활화된 줄서기,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
이 모든 것들이 넓은 땅에서 나온 습관인 것 같다.
딴에는 이 십여 일을 부지런히 쏘다녔지만
겨우 서부지역의 관광지 일부만 주마간산으로 스쳐 지났을 뿐이다.
낚시의 갈증은 심해졌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득은
의외로 많고 새로운 도전 목표와 계획도 생겼다.
역시 최대의 수확은 가족이 함께 한 것이다.
딴에는 가족과 많은 대화를 하려 노력하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집에 있는 많지 않은 시간에도
아들, 며느리와 한 달에 평균 한 두 번 씩은
식사도 같이 하고 영화도 보고 볼링장도 가곤했는데
여러 날을 같이 여행하다보니 애틋하고 정겨움이 더해서 좋고,
특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거의 매일을 혼자 집에 남겨 놓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낚시가 직업이니 이해해 주겠지 했었는데
얼마쯤은 마음의 빚을 탕감 받은 기분이다.
국내는 관광지나 명승지, 유명 낚시터 섬 등은 가족과 함께
거의 다 한번쯤 다녔던 곳이라 일 년에 한번이라도
개인적인 낚시도 좀 줄이고 프로그램을 줄이더라도
해외로 일정을 잡아 가족여행을 정기적으로 할 계획을 세웠다.
그 첫 계획으로 새해 첫 번째 여행지는 하와이로 아예 정해버렸다.
딸과 사위는 미국에서 하와이로 오고
아들내외,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가면 시간이나 거리나
각 6시간쯤 걸리고 딱 절반이니 제대로다.
목적했던 낚시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낚시인으로서의 보람은 의외였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고 교포도 많았는데
하루에 서 너 명씩은 낚시인으로 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인들도 가끔 한명씩 어눌한 말투로
“이 팀장님! 안녕하세요?” 말을 건네는데 순간 당황했다.
이제 어딜 가나 세월이 흘러도 난 언제나 팀장이구나!
설마 이곳에서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사인을 요청하고 기념촬영을 요구하니 괜히 우쭐해지고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낚시인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고
낚시가 글로벌한 레저로 확고한 위치에 있다는 가슴 뿌듯함도 느낀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낚시를 서민레저라 말하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원초적인 레저라 쉽게 말하고
다른 취미나 레저생활과 달리 한 단계 낮게 보는 시각이 있다.
고급레저로 골프를 꼽고 낚시와 종종 비교되는 걸 본다.
허지만 미국 등 선진국일수
광활한 대지와 넓은 초원.
골프는 집 주변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저인 반면
낚시는 거리와 경비, 장비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저가 아니다.
정반대의 시각이나 인식차이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꿔 놓지못한 자책감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큰 소득은 미국의 낚시 친구들을 만든 것이다.
일정이나 경비 현지상황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낚시 전진기지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또 하나의 결과물로
낚시여행 계획을 세워 꼭 한번 도전 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한다.
사람은 꿈이 있어 행복 할 수도 있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진정 행복한 것이다.
새해! 꼭 그 행복을 누리고 싶다.
溪流이 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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