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난 자, 남은 자-
9층에서 바라보는 창밖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열 병합 발전소 높은 굴뚝에서 내뿜는 회색 빛 연기와
병원 뒤쪽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뿌리내린
활엽수의 앙상한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스산하게 한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다 이제야 오셨습니까?”
“길어야 삼 개 월, 의학적인 판단으로는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환자분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던 해 주시고
마지막 정리할 기회를 갖게 하십시오.”
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한마디씩 하는 의사의 말에
순간 멍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충격이 온 몸을 감싼다.
육 남매 중 둘째, 늘 장남의 그늘에 묻혀 희생을 강요당하고
동생들에겐 양보만 해야 하는 어정쩡한 위치가
바로 형제가 많았던 우리 세대의 차남이다.
아무리 어려운 충청도 시골이지만
장남은 항상 다른 형제보다 모든 것에 우선이었으며
능력을 떠나 장래의 기대를 한 몸에 지는 그런 자리로
형제가 말썽을 피워도 책임을 피해가고 둘째는 잘못도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뒤집어쓰며 살아왔다.
장남에겐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주고
전답을 팔아서라도 공부를 시키지만 차남은 언제나 천덕꾸러기 신세인데
그러면서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살아오던 차남,
바로 나의 아우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일, 그 사이 미이라처럼 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우리를 남겨두고 기어이 눈 내리고 2008년이 저무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멀리 떠나갔다.
그토록 열심히 하더니 전문낚시인이 되었다며
정작 나보다도 더 좋아하고 제대로 낚시용품하나 챙겨주지 못하고
어쩌다 찌라도 하나 줄라치면 어린아이마냥 즐거워하며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낚시터에 동행하면
들떠서 어찌할 바 모르던 사랑스런 아우,
형제 이전에 힘들고 어려울 때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던 속으로 최대의 후원자이자 낚시친구인
아우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고 허전하다.
“형 거짓 없이 내게 얘기해줘 나 다시 일어서기 힘들겠지?
형이 바쁜 건 알지만 형하고 일주일쯤 같이 여행하면 안 될까?
나 아직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는데
형과 같이 낚시터에 나란히 앉아 무늬오징어도 낚고
먼 수평선도 보고 싶어”
“그래 가자! 바쁘다는 핑계로 살기 어렵다는 구실로
너무 무심히 살았구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일주일간의 긴 여행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정리인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었다.
병원의 담당의사도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하니
보호자가 어려우면 담당의사로서 본인에게 알려주겠노라는 것을
간곡히 만루하고 내 스스로 말 해주지 못했지만
이미 본인 자신이 알고 있음에 더욱 가슴은 미어지는 것 이었다.
기운이 없어 휠체어에 앉아 서귀포방파제에서 낚여 올라오는
무늬오징어를 제압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낚싯대를 움켜지고
놓지 않으며 애써 고통을 참고 우리를 배려하는 그 모습이
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 이상 낚시를 좋아하면서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와
이겨내기 벅찬 현실 때문에 마음 놓고 낚시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언제나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물가에 앉으면 꼭 한 번씩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며
세월이 흐르고 노년이 되면 나란히 낚싯대 드리우고
낚시친구로 살자 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려 하는 것이다.
참 많이도 울었다.
눈치 챌까 두려워 소리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일주일 내내 울었다.
휠체어를 밀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관광지를 돌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기력 때문에 울었고
평생을 선하게만 살아온 아우가 왜 이렇게 시련을 겪는지
안타깝고 가여워서 울었고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신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며 야속해서 울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못난 형을 찾으며
이미 풀려버린 동공에 단어가 되지도 않는데 무언가
말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주르르 눈물을 흘리더니 내 곁을 떠났다.
마지막 입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그 의미를 난 안다.
가족을 부탁하고 내 몫까지 살라는 제주 여행길에서의
마지막 당부가 아니더라도 난 아우의 마음을 알고 있다.
낚시인의 길을 포기할까 하는 순간에 늘 힘을 실어주고
형의 길은 낚시뿐이라며 최고가 되라며 응원해주던
아우의 뜻을 난 알고 있다.
한 줌 재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된 동생의 영정을 바라보며
이제는 편히 쉬라 빌어보지만 가슴속에 옹이 되어 박혀있는
회한은 죽는 날까지 나를 옥죄리라.
“형! 형을 믿어. 형이 자랑스러워.
어릴 때나 지금이나 형은 나에 우상이야”
무엇을 믿고 무엇이 자랑스럽단 말인가!
언제나 그늘에 묻혀 숨소리도 절재하며 살아왔으면서도
불평한마디 불편한 기색 한번 내색하지 않았는데
떠나기 몇 일 전 생생한 의식으로 마지막으로 남긴
비운의 차남, 내 아우의 당부의 말.
“형! 나는 한 번도 내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했어.
허지만 형은 형이 가는 그 길, 낚시의 길. 절대 포기 하지마
무엇인가 결과물이 없을지라도
뜻을 세우고 정진하는 그 자체가 절반의 성공 아니겠어?”
사실 아우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낚시밖에 없다. 잘하고 못하고를 차치하고
해온 것이 낚시이고 할 줄 아는 것이 낚시뿐이니
죽는 날까지 낚시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회의를 느끼고 나태해지려는 순간,
떠나간 사랑스런 아우가 나에게 힘을 주리라.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최선을 다하는 낚시인이 되라는
사랑스런 아우의 바램을 내 어찌 외면하겠는가.
물가에 앉으면 제일 먼저 아우의 얼굴이
일렁이는 수면위에 찌 솟음과 함께 떠오르리라.....
2009년 1월 사랑하는아우를 영원히 보내고.
溪流 이 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