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놈, 놈, 놈 -
씨알은 그리 크지 않은 뼘치급이 주종을 이루지만
두 시간여의 끈질긴 집어 끝에 드디어 붕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곳의 붕어자원이나 저력을 모르고 처음 도전한 꾼이라면
이미 낚싯대를 접고 일어나 미련이 남은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어 낚시일정에 짬이 있다 해도
더 늦기 전에 인근의 또 다른 낚시터를 물색하려고
바빠지는 마음을 다 잡으며 조바심이 저만큼 앞서는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는 시간.
그동안의 경험이나 통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져
그것을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얻으니 기쁨은 배가 된다.
절기상 계절은 분명 봄인데 따사로운 햇살은 간곳없고
한겨울 못지않게 불어대던 차가운 바람의 끈질긴 방해에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서서히 어둠이 깃들면서 불어대던 바람이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낚싯대를 들어 미끼를 달기도 어려울 정도다.
일기예보에 약간의 바람과 비가 예보돼있어 짐작은 했지만
언제 예보가 제대로 맞은 적이 있는가!
이번에도 그냥 예보일 뿐이지 저녁이나 먹자고 애써 외면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좋다던 날씨는 잘도 바뀌더니 좋지 않을 거라는 날씨는 왜 바뀌지도 않는지
조금 온다던 비가 장맛비로 변한다.
그래 손맛도 봤겠다. 난방시설도 돼 있고 TV, 냉장고 좌대 시설 좋겠다.
차가운 바람에 적당히 피곤함도 몰려오고 낚시계 공인 백수인 처지에
내일도 있으니 오늘은 휴식모드 돌입이다.
왁자지껄 싸우는 소리인지 고함인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출렁이며 수상좌대를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바로 인접한 좌대에서
한바탕 서부 활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육두문자에 무엇인가 집어던지고 걷어차고 누군가 한사람쯤
영구차 불러 장례식장으로 후송할 기색인데
치사하게 좋은 주먹 놔두고 입만 푸짐하지 더 이상 진전되는 액션은 없다.
자고로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이라는데 거기에 예사롭지 않았던
남녀 인적 비율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낚시는 못해도
무료하지는 않으니 낚시가 참 별난 상황까지도 경험케 한다.
바람은 불지, 낚시할 여건은 안 되지, 넓은 저수지에 낚시인이 들어와 있는
수상좌대는 딱 두 개뿐인데 바로 붙여 놓듯이 수초 대에 나란히 있는
옆 좌대에서 일어나는 생 쇼에 난리 블루스가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후에 보트를 타고 좌대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저들의 인적구성이나 행동이 예사롭진 않았다.
남자 넷에 여자 둘, 펼쳐 놓은 낚싯대는 二人분.
그냥 낚시 좋아하는 친구 따라와 곁에서 삼겹살 구워
소주나 한잔 걸치고 콧바람이나 쏘이겠거니 무심히 지나쳤는데
여기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어느 하나의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기 위해선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29번의 경미한 전조가 있고
300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1:29:300 비율의
하인리히법칙이 여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삼겹살을 굽고, 먹고, 마시고, 바람도 차고, 입질도 없으니
낚싯대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 낚시인도 낚시는 의례적이요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듯 왔다갔다 마음은 콩밭인데
일찌감치 벌여놓은 고스톱 판에 낚시는 애시당초 글러먹었다.
허긴 일부러 관심을 가진 건 아닌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남자 넷, 여자 둘, 그들의 관계였다.
말투나 행동 등 모든 것을 종합해 보거나 선수는 아니지만
그동안 축적된 경험이나 이론상 어떤 공식을 대입 해봐도
그들이 부부로 이루어진 짝도 아니요 제대로 된 낚시인도 아니었다.
낚시터에서 수상좌대를 이용하는 낚시인은 대개가 베테랑들이다.
낚시자리 선정하고 낚싯대 펼치는 모습만 봐도 수준이 나오는데
포병 출신인지 고사포 설치하듯 하늘을 향한 초릿대나
들쭉날쭉 세워 놓은 찌 높이가 난 낚시인이 아니요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참견할 일도 아니요, 당신들은 낚시인이 아니니
낚시를 하지마라 할 수도 없으니 궁금증은 남지만
낚시외적인 목적에 건전한 의도는 분명 아니다.
예견된 수순, 낚시를 빙자한 술판에 화투판, 핑크빛 남녀관계.
크건 작던 간에 도박이라는 것이 묘한 면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선의의 경쟁이나 배틀 구조는 재미와 매력도 있고
목적의식이 높아지고 승부욕은 최선을 다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데
사소한 것이지만 금전적 내기는 자칫하면 인간성이 들어난다.
자주 만나는 낚시인들이나 주변의 지인, 친구들과 어울려
내 자신도 카드를 치거나 고스톱 판을 벌일 때가 있다.
가산을 탕진하거나 전 재산을 날리는 것도 아니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어울리는 맛이 있어 좋아하는 편이라 거절 못하는 입장인데
매번 내 돈을 따먹어도 밉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할 때마다 돈을 풀어 놓는 호구인데도 얄미운 사람이 있다.
그 때 한순간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그 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되어 일상생활에서 고정 관념화되는
폐단이 있기에 그것이 조심스러운 것이다.
낚시터에서 여자.
이것 또한 무한한 상상력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일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는 레저로 낚시가 변하고 있고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레저로서 낚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한때, 낚시하면 일요과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고
나 홀로 행위라는 부정적인 취미활동으로 오해를 받고
몇 일간 낚시터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고기와 씨름하다보니
꾀죄죄하고 초라한 몰골에 노숙자 저리가라 지저분해
세분하면 백 여 개가 넘는 레저 중 가장 저급취미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특히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어디선가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본능, 아니 수컷의 본능을 고스란히 일으킨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 낚시터 수상좌대가 그 목적이나 용도와 관계없이
부정적으로 묘사 되곤 한다.
범법자들의 은신처 아니면 남녀 간의 부정한 관계 설정이 그 부분인데
낚시의 “낚” 자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들이 바로 그 유명하다는
연출자나 감독이라는 작자들이고 그들 또한 부정적 이미지제고에
일조한 사람들이다.
아내와 부부가 되기 위해서 난 장인어른의 반대를 이겨내야 했었다.
헌데 결혼을 반대하는 논리가 참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당신 스스로가 정해 놓은 일정한 세 가지 룰,
그 원칙이란 것이 조급은 황당한 것이었다.
이른바 놈, 놈, 놈,
첫째, 키 작은 놈은 안 된다.
당신 자신이 왜소하고 작다보니까 남자는 무조건 커야 되고 기골이 장대해야 된다.
둘째, 해병대 나온 놈은 안 된다.
당신이 육군 현역시절, 휴가 오가는 길에 해병대에게 너무 당해 그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셋째, 낚시 하는 놈은 안 된다.
당신이 낚시인이고 진천이 고향인데 초평지에 작은 집 차려놓고 두 집 살림 해봐서
잘 아는데 낚시인은 바람둥이다.
이 희귀한 논리를 완성 하는 데는 고삼지에서 촬영한 “섬”이라는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영화도 한몫 했다.
키 작은 거야 누가 작고 싶어 작았겠나!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불가항력이니 어쩔 수 없고
해병대야 지난일이니 이해를 하실 수도 있다하면서
세 번째, 낚시만큼은 현재 진행형을 과거형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림없다 시며 손사래를 치시는데 초평으로 백곡으로
몇 번 모시고 다녔더니 체면에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데릴사위로 맞이하고픈 심정이셨음을 난 알고 있었다.
봄비 오는 저수지, 수상좌대에서 펼쳐진 네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
귀 기울여 애써 듣지 않아도 뻔한 스토리다.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연인관계이고 친구 소개시키려 날자 잡았는데
여자 두 명이 일정이 펑크나 짝 수 못 채우고
술김에 벌어진 고스톱에 돈도 잃고 있는데
파트너는 다른 놈을 거들고 있으니 속도 뒤집히고
쓰리고에 피박 쓸 판인데 잘 됐다 싶어 말꼬리 잡아 판 뒤집어엎고
고래고래 소리쳐 잠든 낚시터 주인장 깨워 겨우 구색 갖춘 낚시가방
정리해 허겁지겁 낚시터를 빠져 나간 것이다.
불어대던 바람도 자고 비도 멈췄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다.
어두워지고 불과 몇 시간.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잠까지 자고
몇 십 년 경험했던 일들을 한 순간 다 보았다.
단순한 몇 사람의 해프닝이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못 쓸 낚시터 종결 편을 연출해 준 것이다.
여자와 좌대타고 입질 없다 핑계대고 딴 짓하지 말라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떠나고 비어버린 옆 좌대에서 들려온다.
낚시터에서 술판 벌이는 놈,
낚시터에서 도박 하는 놈,
낚시터에 남의 여자 데리고 와 딴짓 놈,
낚시를 빙자 마라!
일교차 큰 봄날 溪流 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