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어와 사람 사이 -
거실의 불이 모두 꺼지고 사위가 정적으로 접어들면
이제부터 저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며 먼저 입성한 것 하나로
자기 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가장 덩치가 큰 자가 종래는 몇 가닥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수초 대 언저리를 기어이 차지하고 마는데
베란다 밖 가로공원 나무들 사이로 함박눈이
참으로 푸짐하게 내리는 깊은 밤에 거실에 앉아
좁은 공간에서 쫓고 쫓기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귀다툼하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축소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11월이 끝나는 마지막 날.
고향집에 육남매가 모여서 부모형제가 정겨운 얼굴로
굽고 지치고 푸짐한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며느리들은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여앉아
집안의 접시란 접시는 다 깨는 것 같고
아버지는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가 연속극에 빠지시고
술이라면 말술도 마다않는 셋째와 막내,
우리 집안의 백년손님 덩치가 코끼리만한 매제는
반주로 시작한 술자리를 오늘의 메인이벤트로
당당히 승격시키며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
술도 하지 않고 평소에 장남에 장손인 나를 어려워하는 처지라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작은방에 들어와 누우니
포만감과 함께 나른함에 눈꺼풀이 사르르 내려앉는다.
무언지 모를 아쉬움에 허전함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대문 앞에 세워둔 차를 보고 늘 고향에 오면 같이 낚시를 다니는
제자(?)들의 방문이 나를 잡아끌어 어머니 품속 같은
탑정지로 밤낚시를 떠났다.
얼음이 얼기 전까진 마릿수는 적지만 낚였다하면 월척 급이고
5미터 이상의 깊은 수심에서 올라오니
그 손맛은 오장육부를 오그라들게 하기 십상이다.
늦게까지 낚시가 이뤄지고 삼일절을 중심으로
동산 골이나 신풍리 권에서 물 낚시가 빠르게 시작되는
탑정지는 가히 낚시의 보고요 매력덩어리였다.
낚시제자라지만 어찌 보면 참으로 낚시로 인해
모호한 관계가 우리사이다.
형님이라 부르기도 그렇고 아저씨라 하기에도 애매한 나이인데
담배 때문에 매번 멀찍이 않아서 불편해하니까
형님이라 부르라 해서 형님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 형님이라 부르는 걸 보고나서는
호칭을 아저씨로 바꾸었다.
계속 형님이라 부르다가는 자칫하면
아버지가 큰 형님이 될 판이니 말이다.
제방 좌측 안골에 자주 대형붕어가 나오니
이참에 우리도 월척 한수 낚아 보자며
대답도 끝나기 전에 주섬주섬 낚시가방을 내 차에 옮겨 싣고
말은 하지 않아도 빨리 가자고 눈 사래를 친다.
탑정지 제방 아래 도로를 따라 안골입구에 차를 세우고
일주도로의 가로등 불빛에 길을 찾아
첫 번째 만곡 진 곳을 지나 튀어나온 곳부리에
늘 그렇듯 한 대의 낚싯대를 펼쳤다.
수심이 약 5미터. 3.6칸 낚싯대에 두 바늘 채비.
두 바늘에 찐 깻묵과 콩가루를 혼합해 조금은 크다싶은
크기로 서 너 번 투척하고 기다림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다리는 입질은 없고 밤은 깊어 가는데
살랑살랑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몇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고
비는 금방 멈췄지만 거세게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한 번의 입질 때문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 설수도 없지만
이곳은 이런 날 뜻하지 않은 대물붕어가
종종 낚이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지라
198만평의 국내 두 번째 큰 저수지가
흡사 주의보 터진 원도 권 바다처럼 파도가 일렁이는데
떡밥을 갈아 던지고 또 다시 뚫어져라 찌 불을 응시한다.
“이보게 아우! 커피 한잔 하게나”
(우리 아버지께 형님이라 부르고 나는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나에게 아우라니 이런 개 촌수가 있나)
방한장비를 갖추었지만 정작 한겨울 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것이 겨울이 시작되는 초입인데
바람까지 불고 비도 조금 내렸으니 자정이 돼가면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가끔 입질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추위라도 잊으련만 입질조차 없고
먼저 나서서 설레발을 쳤으니 철수하자고 말도 못 할 처지라
모닥불을 피우고 커피를 준비하더니 자꾸 불러댄다.
한번 앉으면 밤을 꼬박새우며 요지부동인
내 낚시스타일을 아는지라 말도 못하고
이미 낚시는 뒷전이고 불이나 쬐면서
시간이나 보낼 심산 인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낚싯대 걷고 일어설 내가 아니다.
낚시를 하다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불가사의한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낚싯대 펼쳐놓고 비몽사몽 졸다가도
찌 올림을 감지하는 것인데 오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바싹 마른 삭정이들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곁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이다보니 일어서는 걸 잊는다.
거지가 모닥불에 살찐다더니 배는 고파도
이 맛 때문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멀리 아련하게 보이던 케미컬라이트가
분명 한 대를 편성했는데 두 점이 되어
거의 파도수준인 물결에 일렁이고 있다.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한 번 살펴봐도 그것은 분명
찌 올림이었다.
육상 백 미터 세계기록 보유자 우샤인 볼트가 이정도일까?
냅다 뛰어가 낚싯대를 잡고 힘차게 챔 질을 하는 순간
덜컹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낚싯대가 쑤셔 박힌다.
대물이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 어쩌면 이제까지의 내 기록을 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뜰채가 없어 만곡 진 모래톱으로 살살 끌어내
품에 안은 붕어는 내 생애 최고 기록인 47.4cm.
아내의 지청구는 물론이지만
물갈이 할 때마다 물차를 동원해야하는 번거로움과
만만치 않은 수족관 관리비를 지출하면서도
베란다 전체를 수족관으로 꾸미고
지역별로 낚은 월척을 집어 넣다보니
이십여 수의 대 가족이 되었는데 이제 또 한 마리의 월척이
눈만 뜨면 바라 볼 수 있는 우리 집 거실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놈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미 수족관에 있는 다른 붕어들이
그렇게 먹이를 많이 주는데도
머리만 크고 몸통은 비쩍 말라 기형처럼 보이다보니
크기도 물론 크지만 상대적으로 느끼는 감은
가히 다윗과 골리앗 수준이다.
헌데 대형붕어들의 공통점은 처음 수족관에 넣으면
다른 녀석들과 멀찍이 덜어져 먹이를 먹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일 정도로 마르는가 싶으면
그때부터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데
식사를 하다가 멸치 대가리를 던져줘도 덥석 받아먹고
미꾸라지를 넣어 놓고 하룻밤을 지나고 나면
그 또한 보이지 않는다.
늦은 밤 가만히 녀석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좁은 수족관 안에도 분명 명당이 있고
그들에게도 서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수족관에 탑정지붕어가 들어 왔을 때는
무리와 동떨어져 혼자 지내는가 싶더니
늘 밤에 일정한 한 장소.
인공수초가 있는 곳에 모여 있는 기존 붕어들의 안식처를
끝내 차지하고 마는 것이었다.
사업적 위기와 현실적 어려움으로 집을 옮기고
수족관의 붕어들을 집 근처 안산의 화랑저수지에 방류하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훔치면서도 언젠가 안정을 찾으면
내 다시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 너희를 모셔 가리라 다짐했는데
십 수 년의 세월 속에 그 때 그 붕어들은 천수를 다했겠지만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해야 할 때가 온 걸 보니
전문 낚시인으로 참으로 많은 세월을 물가에서 보냈고
이제는 낚시인과 대상어인 붕어가 아닌
내가 붕어이고 붕어가 나인
하나인 것 같은 동질성을 느끼는 건 아닐까?
溪流 이 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