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윤 부자네 논배미에 있는 세 개의 둠벙 중에서
가장 붕어가 잘 낚이는 산자락 밑에 있는
수심이 제일 깊은 둠벙에서 일군 두 명이 두레질을 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길 다란 함지박 같은 용두레로
언제 저 넓디넓은 논바닥을 적실지 내심 의구심이 들면서
시간만 나면 달려가고 소꼴을 먹일 때도
혼자 풀 뜯으라고 고삐를 놓아두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
붕어를 낚아 가느다란 싸리나무 꿰미에 꿰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곳에서 두레로
물을 퍼내어 갈라진 논바닥에 연신 쏟아 붇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퍼내다보면 종래 바닥이 들어 날 테고
그곳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붕어는
어떻게 되나 싶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발 한발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새벽부터 얼마나 퍼냈는지 논두렁 뭉개질까봐
박아놓은 말목들이 허리를 드러내고
시커먼 뻘 층이 들어나 있다.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곳답게 조금 있으면
물이 고이고 다시 두레질을 시작하고
일꾼들이 지칠만하면 쉴 타임이 되고
참 절묘하게도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붕어는 없었다.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그렇게 많았던 붕어가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장마철 물푸레 나뭇가지에 머릴 척 걸치고
음흉스럽게 쏘아보다 물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던
이무기 같은 가물치도 보이지 않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뻘 층으로 깊숙이 숨어 버린
놈들이 고맙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물을 퍼내도 비가오고 다시 물이 차오르면
어김없이 붕어가 나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지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는데
순간 푸드득 붕어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물꼬부터 벼 이랑 사이사이를 샅샅이 살펴봐도
붕어는 보이질 않고 환청인가 싶어 발길을 돌리는데
논 귀퉁이에 벗어서 가지런히 놓아 둔 검정고무신 안쪽에
딴에는 숨는다고 은신처를 찾아 머리를 신발 코빼기 쪽으로 향하고
꼬리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드는 감잎정도 되는 붕어 두 마리가
내 몸의 모든 세포를 자극하며 긴장감과 함께 전의를 불태운다.
유난히 가금이 극심해 수로는 마른 먼지가 풀풀 일어나고
소류지 형태의 인근 저수지들도 바닥을 들어내고
전국에서 그 두 손가락 안에 드는 탑정저수지가
부끄러운 곳만 살짝 가린 여편네처럼
흉한 몰골을 보이며 체념 한 듯 하늘만 보고 있으니
그나마 물이 있는 곳은 논 귀퉁이의 수맥을 찾아
요소요소에 파 놓은 둠벙뿐이다.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 깊이도 가늠할 수가 없다
크기야 킹콩 손바닥 만 한 것부터 커봐야 시골집 안마당정도이고
바닥이 뻘 층이라 낚싯대를 드리우면 두발정도의 수심이지만
정작 물을 빼내고 바닥이다 싶어 살펴보면
그 뻘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지렁이 달아 대나무 낚싯대를 드리우면
깻잎붕어가 줄줄이 낚여 올라오고
간간히 감잎 씨알에 잊을만하면 한번씩
지금 우리가 말하는 월척, 보습붕어가 명주실 끝의
옷핀 잘라 구부려 만든 바늘에 걸려나오니
거리도 지척이요 잠깐낚시에 대여섯 마리면
먹거리와 찬거리가 귀한 시골밥상에
어른들의 칭찬과 함께 풍성함을 안겨주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붕어를 낚을 수 있는 곳이요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둠벙이었다.
냅다 붕어 두 마리를 양손에 움켜지고 뛰기 시작했다.
가물어 말라가는 논바닥을 적시기위해 퍼내는 두레질에
엉겹결에 휩쓸려 나온 붕어를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평소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낚을 수 있는 붕어인데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 그냥 무조건 내달렷다.
멀리서 소리치는 일꾼 아저씨들의 고함소리를 뒤로 한 채
자꾸 벗겨지는 검정고무신 속에 종래는 붕어를 담아
손에 들고 맨발로 무작정 뒤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까지고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종아리가
들풀에 쓸려 아리함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갑자기 낭떠러지가 눈앞에 펼쳐지며 시퍼런 물속으로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꿈이다.
거의 45년 전 어릴 적의 일들이 현실처럼 생생하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수로에서 찬바람 맞아가며
이틀을 꽝 친 후유증일까?
남들은 연신 낚아 내며 손맛을 만끽하는데
온갖 폼 잡아가며 추위도 마다않고 체면치레 하겠다고
동이 트자마자 자리 잡고 앉아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붕어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
모텔에 도착해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어릴 적 둠 벙 속의 붕어가 기억 저편의 추억을 일깨워 준다.
삼국시대 때 축조되어 오늘날 저수지의 시초가 된
벽골재가 있는 김제의 원평천.
하류 죽산교를 중심으로 믿기지 않을 조황을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곡창지대는 붕어도 많다.
물론 곡창지대라 먹을 것도 많지만 수로의 발달로
서식여건이 뛰어난 것도 한 요인이고
바로 뻘로 연결되는 서해바다와 기수면이 있어
풍부한 영향이 있는 먹이와 석축으로 이루어진 깊은 수심 등
최상의 조건도 한 몫을 했지만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월척급 이상의 씨알로 엄청난 마릿수를 보여 주었다.
그것도 잠시가 아닌 두 달여 지속되는 상황이니
누구라도 낚시인이라면 군침이 돌지 않겠는가!
통념을 벗어난 낚시.
21척이상의 길이의 낚싯대. 소위 말 하는 강한 채비.
포인트를 중심으로 개인이 설치한 갖가지 형태의 좌대.
부러움 반, 안타까움 반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주변의 쓰레기를 애써 외면하는데 치솟는 오기가
또 하루를 머물게 한다.
갖고 있는 긴대도 없으려니와 이제 누가 뭐라던
내 낚시를 하자 싶어 13척 낚싯대에 상류로 자리를 옮겨
석축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고만고만한 30전후의
떡붕어 여섯 마리가 체면을 살려 준다.
난 낚시를 하면서 고집스런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중에서 하나가 바로 꽝 친 곳은
꼭 재도전 하는 것이다.
촬영을 위한 것이던 개인적인 출조 이건 간에
결과를 볼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는 것인데
이번에 이곳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오죽하면 몇 십 년 전의 아스라한 기억들이
꿈으로 나타났겠는가.
7년 전 이곳으로 가물치 촬영을 왔다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삼일 후 다시 개인적으로 재도전해 기어이 가물치를 낚고
김제 지역에 가물치 루어낚시 붐이 일어나면서
그때부터 돈독한 우애를 맺게 된 수심낚시 주인장과는
지금까지도 낚시친구로 정보를 교류하고 있고
이번 출조와 촬영에도 신세를 지고 돌아 왔고
의식 있는 낚시인들로 인해 몰아친 강추위에도
따뜻한 가슴으로 보람을 느꼈다.
김제 군청에 가서 종량제 쓰레기 수거봉투를 몇 십장을
개인이 구입하기엔 부담이 되니 지원해달라며
가지고 온 낚시인이 우리 조금만 힘을 모으자며 앞장서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주변의 쓰레기가 말끔히 치워지니
힘은 들었지만 50리터 봉투 30개면 한 트럭 분량인데
낚시인들이 힘을 모으면 되는데 그 많은 낚시인중
참여자는 두 명 뿐 이라는 것이 못내 아쉬웠고
앞장선 그 분과 통성명을 하지 못함도 마냥 아쉽다.
아무리 붕어가 많이 낚이고 조황이 좋아도
낚는 사람만 낚게 되고 특히 겨울에는 포인트가 제한되는 법
원평천 붕어 호황이 겨울 내 지속될 거 같지만
아무나 낚지 못할 거라는 염려가 들고
행정관서에서 개인이 설치한 좌대나 부속물들을
자진해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한다니
그 또한 마음에 걸린다.
못 낚은 낚시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잘 낚고 많이 낚은 낚시인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바톤 터치 낚시는 언제쯤 사라질라나.
겉과 속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먼 과거와 현실이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건
그것이 낚시이고 내가 낚시인이기 때문이다.
낚시는 낚는 것이되 그것이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의 한 자락이
시공을 넘나들며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직사각형의 한 끝을 말아 붙여 안과 것의 경계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오늘따라 유난히 정겹다.
溪流 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