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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멋진 계획을 세워 폼 나게 프로그램 만들어 보자고
몇 일간 부산을 떨며 항공권 예약, 현지 점검, 조황확인,
동행할 인원 파악과 낚시장비, 소품 등 리스트까지 만들고
예정과 달리 인원이 많아지니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팀별로 움직이는 동선까지 고려해 스케줄을 짜서
현지에서 설왕설래 관광코스나 낚시 대상어로 인해 혼선이 일어날까 봐
해병대 현역시절 작전하사관 경험을 살려 군사작전 하듯이
사전에 철저한 도상연습과 리허설까지 했건만
어디서 핀트가 맞지 않았는지 아니면 나사하나가 풀렸는지
무엇인가 꼬집어 말 할 수 없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더니
출발하는 교통편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촬영 팀을 둘로 나눠 한 팀은 비행기로 이동하고
다른 한 팀은 장흥으로 가서 배편으로 제주 성산으로 이동
모슬포에서 합류하기로 계획하고 일정에 맞춰 계획을 추진하는데
그 첫 단계 배편부터 탈이 나고 말았다.
한정된 예산과 일정을 감안하고 새로운 재미를 담아보려 하는데
장흥 노력 항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이 하필이면 우리가 계획한 일정,
더도 덜도 아니고 출발해서 돌아오는 육일 간, 딱 그 기간 동안
승무원 교육 및 안전점검을 위해 운항을 중단한다니
작전계획이 적에게 새나가 작전도 펼치기 전 패장이 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처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요,
제주 가는 배가 장흥에만 있는 거도 아니고 목포나 완도,
아니면 수도권에서 인천으로 가도 되고
일부가 항공편을 이용할 계획이었으니 비행기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변경되는 계획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열여덟 명의 대 식구가
공항으로 이동,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는데
한번 삐걱대니 그냥 지나쳐도 좋으련만 연이어 구색을 갖춘다.
두 명의 신분증 미소지. 한바탕 난리법석 부산을 떨고
앞으로 펼쳐질 좌충우돌 제주에서의 낚시여행이 어떠하리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슬그머니 드는데 여행의 기대와 설렘이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도 신기하게도
고쳐지지 않고 잊을 수가 없는 것이 있다.
어릴 때 소풍가기 전날의 설렘을 말이다.
얼핏 잠들었다 날이 밝았거니 눈을 뜨면 한밤중이요
그러기를 너 댓 번 반복하고 나면 아침이다.
뜬눈으로 밤을 거의 지새우는 것이다.
소풍가기 전날의 설렘이 어느 날부터인가 낚시가기 전날로
바뀌었을 뿐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는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낚시 뿐 아니라 낚시에 관련된 일에는
모든 것에 이 법칙이 적용된다.
촬영을 나가기 전날이나 낚시대회 전날은 물론이요
사소한 낚시이벤트라도 있게 되면 전 날은 거의
잠을 설치게 된다.
충혈 되고 게슴츠레한 눈과 지친 표정으로 방송을 하거나
행사를 하지 않으려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려 노력하지만
한 번도 뜻을 이룬 적이 없어 이제는 아예 체념상태이고
아마도 이 버릇은 죽기 전에는 영영 치료 불가능한
직업병일는지도 모른다.
묘한 습성하나가 생활로 자리 잡았다.
늦가을 겨울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듬해 삼월까지는
바닷가를 수시로 드나드는데
현지 낚시점 일일점원 노릇을 꼭 하게 된다.
어차피 못자는 잠, 밤새워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새벽에 낚싯배에 올라 그때부터 포인트에 도착 할 때까지 단잠을 잔다.
길면 한 시간, 짧으면 몇 십분,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 드는데 비행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 내려앉는 눈꺼풀이
지난 몇 일간의 피로를 떨쳐 버리기라도 하는 듯
스르르 감겨 온다.
저녁식사를 위해 제주 토속음식 흑 돼지 집에 모여 않으니
소식을 듣고 모여든 낚시친구들이 합류
일행은 삽 십 명에 육박하는 소대병력으로 불어나고
식당 전체가 들썩이는 잔치판으로 변해 간다.
공중파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전국을 무대로
유명 연예인들을 내세워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어
그 여파로 낚시프로그램도 대상어만 낚는 것보다
볼거리 먹거리와 낚시여정에서 벌어지는 상황 하나하나가
주목받고 관심과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는데
제작과정에서의 차이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이다.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다 채우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결국은 제작비로 불리는 돈이 문제다.
늘 부러운 것이 제작에 참여하는 어마어마한 장비와 인력.
하늘 땅 바다를 가리지 않는 입체적 구성과 대단위 지원팀이었는데
불과 삼 십여 명이 모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괴리를 맛봐야 하니
촬영현장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한다는 자부심도 잠시
공허한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계획에서 한 치만 벗어나면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어려움.
그 어려움 속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데
열악한 환경을 이해하고 뜻을 같이하며 도움을 주는
낚시친구들이 있기에 행복을 느끼고 보람을 갖는다.
숙소로 쓰라며 팬션을 제공해주고 갯바위 가이드를 자청해
낚시정보를 쏟아내며 좋지 않은 기상에 한정된 포인트를
원활한 촬영을 위해 확보해주는가 하면 가파도 마라도, 형제 섬 등
계절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어느 것 하나 단정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우리의 일정에 맞춰 처음부터
제주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함께 하던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잊을 수 없다.
더욱 고마운 것은 익숙하지 못한 교통이나 지리에
기꺼이 손발이 되어서 승합차와 승용차까지 제공하며 기사가 되어
늘 함께 해줘서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우리 속담에 도 아니면 모라는 이야기가 있다.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함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십대에 몇 년간 일본인이 경영하는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생활하며 그들에게서 느낀 것 중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사소한 일도 기억에 남게 하는 일이었다.
같이 출장을 다니면서 혹 내가 담배가 떨어져 요청하면
한 갑을 주면 줬지 한 개비만은 주지 않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 개비는 백번을 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갑은 한번일지라도 평생을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비즈니스적인 면에서야 일리가 있고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너무 계산적이라 선뜻 내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정서는 어쩌다 실수를 하게 되면
정상참작의 폭이 크고 다양한데 비해
그들은 비정하리만큼 냉혹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잘 했으니 한 번의 실수는 관대하게 처리해주는 편인데
그들은 철저하게 한 번의 실수에 책임을 물어
처벌을 하는 것이었다.
문명이 첨단으로 가고 사회가 발달할수록 심해지는 건 개인주의고
각박해지는 건 인심이다.
칠 십 년대 모든 면에서 앞서있던 일본인들의 사고가
이제는 일반화된 우리의 정서가 돼 버린 것 같아 안타깝지만
백 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그 한 번의 잘못이 전부가 되는 건
너무나 아쉬운 것 같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분명 잘한 아흔 아홉 번이 남아야 하거늘
요즘 인간의 감정계산법은 All Nothing이다.
100-1=0 인 세상인 거다.
제주에서의 사박오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즐겁고 흥겹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는데
우리를 위해 함께 했던 지원 세력들이 사소한,
극히 사소한 견해차이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백번 잘한 일들이 조그만 하나의 잘 못으로
제로가 되려고 해 걱정스럽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나도 괴롭지만
미결인 상태로 헤어져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그들의 마음은
더욱더 안타까울 터 이번만큼은 하나를 빼 버리고
아흔 아홉 번을 고스란히 남겨 두고 싶다.
계획에서 출발, 그리고 마지막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같이하며 고민하고 정겨웠던 시간들이 배어 있는데
인간의 감정계산법에서 이번만큼은 꼭 빼고 싶다.
100-1은 분명 99이지 0가 아니다
溪流 이 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