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고 호흡까지 거칠어지며
맥박이 빨라지는 것 같다.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고 아무런 생각 없이 TV 채널만 검색하며
시간만 죽이고 앉아있는데 인사 겸해 제주도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굶주리다 먹이 만난 초원의 맹수처럼 날뛰게 만든다.
대책 없이 내린 눈과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에 갈 곳을 찾지 못해
패잔병모양 의기소침해 의욕을 잃고 처져있다 생기를 찾는다.
밤낮으로 밖으로 나돌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 이틀 집에
있으면서 모처럼 집에 있는 날도 눈만 뜨면 기어나가고
밤이 늦어야 집에 들어오는 인간이 근 한 달간을 안방과 거실을 왕복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하루걸러 영화만 보러 잠시 외출하는 것이
전부이니 생전 처음 보고 겪는 일인지라
말하지 않아도 묻어나는 아내의 얼굴에 나타나는 불안감을
난 이미 읽고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그나마 틈틈이 커피며 과일 등 슬슬 눈치를 보며
간식을 챙기던 아내가 삼 일째 아침,
궁금함을 차지 못하고 질문을 한다.
“당신 무슨 일 있어요? 왜 요즘 낚시 안 가?”
세상에 겨우 삼일을 집에 있었을 뿐인데 왜 낚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 사람이 나 말고 세상에 또 누가 또 있을까?
진지하게 묻는 아내의 말에 순간 쿡 하는 웃음과 함께
묘한 장난기가 발동한다.
“응 이참에 낚시 그만두고 취미 생활을 다른 걸로 바꿔 보면 어떨까 해서”
“여보! 골프를 칠까? 아님 당신하고 손잡고 산이나 다닐까?”
정색하며 너스레를 떠는 나를 빤히 처다 보는 아내의 얼굴이 묘하다.
삼 십 여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오직 한길, 낚시밖에 모르는 내가
이제 와서 외도를 하겠다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저 표정 속에 마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하는 불안도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봉하는 영화란 영화는 모두 같이 보러 다녔다.
영화관에서 서로 눈치 챌까봐 아닌척하며 훌쩍이기도 하고
나선 김에 쇼핑도 하면서 종종 외식도 하니
싫지 않으면서도 내심 무언가 찜찜했나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마음먹고 준비를 하려니 이제껏 늘 해왔던
익숙한 일들인데도 마음의 부담도 크고 걱정도 앞선다.
개인적인 낚시야 장르가 달라도 항상 같은 패턴으로 행해져 왔지만
방송으로 새롭게 다가서려 그동안 해왔던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그 준비하는 기간을 미처 아내에게 말하지 않아 걱정을 하게 한 것이다.
무언가 참신하고 멋진 소재가 없을까?
낚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공감하며 호기심을 유발할
그런 아이디어나 장소는 없을까?
그렇게 속으로 고민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머리를 짜느라
딴에 고민하며 노력한 시간들이었는데 아내의 눈에는
할 일없는 백수의 방황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난 낚시의 최고의 가치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고
더불어 할 수 있는 레저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상에서도 포커스를 그곳에 맞추는 낚시를 해 왔다.
한 마리를 낚아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열 마리를 낚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낚시인이 있다.
대물 한 마리의 가치를 추구하며 낚시터에서 길고 긴 시간을
인내하며 고독을 즐기고 밤을 지새우는 낚시인이 있는가하면
잠시 짬 낚시에도 자잘하고 앙증맞은 손맛을 느끼며 어종 구분 없이
마릿수를 노리며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장르 어느 낚시도 다 가치가 있고 나름 장점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현실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분하면 백 개가 넘는 취미나 레저 중에서 등산, 싸이클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낚시가 인정하기 싫지만
불행하게도 최 저급 수준으로 분류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나 홀로 행위 때문이다.
낚시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자체가 여성과 아이들이 동참하고
같이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 사회구조적 원리이다.
몇 년간의 낚시 쪽의 변화를 살펴봐도 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온다.
루어인구의 확산과 배낚시의 활성화다.
모든 경제가 침체되어 평균을 밑돌고 낚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나마 낚시산업의 숨통을 고르게 한 것은 루어와 배낚시이다.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그 중엔 해수온도의 증가로 인한
다양한 어종. 풍성한 자원도 한 몫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동참 할 수 있고 더불어 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빠 따라 갔다가 하루 종일 뜨거운 햇살아래
지루함도 이기기 힘든데 큰소리로 떠들거나
맘껏 뛰어 다니지도 못하는 낚시터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앞장서 낚시가방 들고 나서는 생활 속의 레저로 바꿔야 한다.
특정 장르나 기법의 장단점이나 우월성을 논하며
논쟁 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앞으로의 낚시는 자연스럽게 자연을 주제로 하는 캠핑문화와
함께 갈 수 밖에 없고 가족 중심의 레저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깨끗한 현대적 편의 시설과 안락하고 쾌적한 수상 방가로, 팬션 등
여건이 갖춰진 유료관리형 낚시터들의 연중무휴 운영과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의 인기를 보면
나아갈 방향이 보이고 불황에서 빠져 나올 탈출구도 보인다.
낚시에 낚 자도 모르던 시골마을 한 동네 주민 모두가
그것도 부부동반 관광버스 대절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갈치낚시를 떠나는 진풍경도 이제는 생소한 것이 아니다.
두 세 번의 갈치 출조가 끝나면 봄부터 곗돈처럼 모아 놓은
경비가 남아 자연스럽게 우럭 배낚시나 열기 외줄낚시로 이어지고
머잖아 저 중에 일부는 원도 권 갯바위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감성돔 낚는 전문 꾼도 나올 것이다.
이슈가 있는 이벤트. 공감할 주제가 있는 이야기.
낚시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 사람 냄새나는 정겨운 친구.
거기에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도 함께하며
포근하고 정감어린 그런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고 싶다.
서정적이며 극히 평범하면서도 누구라도 거리감이나 편견 없이
낚시를 이해하고 동참하는 그런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고 싶다.
과정의 시행착오나 충족되지 않은 여건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가며
그 힘든 여정에서도 나름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진실함이 묻어나는 그런 낚시를 하고 싶다.
목표는 정해졌는데 첫 단추를 이 계절에 어디서 어떻게 꿰어야 할까?
바다멀리 제주도의 조황 소식이 그지없이 반가운 건
바로 이런 고민의 순간에 전해왔기 때문이다.
라이트 지깅에 방어의 파이팅이 숨 가쁘게 하고
타이라바로 바다의 여왕 참돔의 선홍빛을 볼 수 있다니
장비 챙기랴 비행기 티켓 예매하랴 난리법석 한바탕 집안을
흔들어 놓고 그동안 칩거가 한방에 멀리 뛰려고 웅크린 것처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사박오일간의 제주도 여행. 짐을 챙기고 뒷퉁수에 꽂히는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현관문을 나서며 맹세하듯
스스로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내가 가야 할 길. 바로 이 길.
My Way.
溪流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