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차 약속-
낚싯대를 펼치고 찌를 세우기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저수율이 채 30%도 되지 않는 벌거벗은 저수지가에 앉아
습관처럼 투척과 챔 질을 반복하지만 결과물을 얻어야 한다는
목표의식도 일지 않는다.
더구나 혹 인근의 농부라도 만나게 되면 괜히 무슨 죄라도 진 것처럼
고개를 들기도 면구스러워 올라오는 찌에 가는 시선보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의 인기척이 더 신경이 쓰인다.
결국 장소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전화로 확인해도 되겠지만
행여 어려움에 직면한 낚시터라면 그것도 못할 짓이라
주변의 상황도 직접 확인도 할 겸, 대를 펼 친지 한 시간도 못되어
낚싯대를 걷었다.
이곳에 와 낚싯대를 펼치기까지 네 군데 관리형 저수지를 거쳤다.
두 곳은 이미 낚시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 오래전이고
한 곳은 지난주 타 들어가는 농작물로 급격한 배수가 이루어져
낚시가 불가능한 1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용존산소량의 부족으로
집단 폐사가 진행되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네 번째 목표로 정한 곳은 돌고 돌다 이러다가는 하루해가 다 저물 것 같아
참을 먹을 시간인오후 4시, 낚시터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반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것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구나! 직감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이 곳은 상황이 정상이다.
지형적 특성상 시내 권에 있는 곳이라 몽리면적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백년만의 가뭄이라는 이 상황에선 정상적인 수위를 유지하는 것은
확인을 해보진 않았지만 관정을 파거나 자연적으로 지하수가
솟지 않을까 예상되지만 어찌되었건 물이 만수라 그나마 다행이다.
백년만의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에 이정도면 축복 받은 곳이다.
혼자만의 낚시 여행이라면 애초에 계획하지도 않았고
아니면 바다로 일정을 잡아 파시를 이루는 오천항의 선상 참돔낚시나
여수 돌 문어낚시, 또는 지난번 이틀간 통영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려
연화도나 욕지도 벵에돔에게 화풀이 하러 갔을 것인데
두 명의 꼬마조사와의 약속이 쩍쩍 갈라진 저수지를 돌고 돌아
이곳 낚시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말이 약속이지 사실은 두 꼬마에게 내가 홀딱 빠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특히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며 애교를 부리는 다섯 살 사내아이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낚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빠의 영향인지 아니면 엄마의 몸속에 있는
태아 때부터 엄마가 아빠의 출 조에 늘 동행한 탓인지
이미 물이나 낚시에 관련된 것에는 관심이 있고 눈에 보이는
온갖 자연의 풀이나 나무 심지어 작은 돌 하나도 이 아이에겐
장난감이다.
평소 난 예전부터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전문 낚시인이 아니었으면 유아원이나 유치원 원장을
했을 것이라고 종종 말하고 나도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자주 못 보는 외손녀와 손자는 미국에 있고 가까이 살고 있는 아들도
내 자신이 집을 워낙 많이 비우는 입장이라 친손녀 손자도
가끔 한 번씩 보는 처지라 늘 눈에 어린다.
사실 두 꼬마는 후배의 늦둥이 아이들이다.
여자 아이가 열두 살, 사내애가 다섯 살인데 이 녀석들로 인해서
족보가 헷갈린다.
저희들의 아빠가 나에게 형님이라 부르니 당연히 난 큰아빠인데
어느 순간 할아버지로 호칭이 바뀌어 개 족보가 돼 버렸다.
처음 만날 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삼촌하며 부르며
품에 안기던 사내아이가 바로 그 녀석이다.
내가 그리도 젊은가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삼촌은 무슨 삼촌, 정정을 해주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상황에 따라 큰아빠였다가 무의식중에 삼촌이라 불렀다가
세 번의 낚시터 동행에 이제는 할아버지로 고정되었는데
급하게 부를 때는 삼촌할아버지라는 짬뽕 신조어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제일의 증거가 동안이라는 덕담 한마디에 기분
좋아지는 것이라는데 이 녀석이 그 걸 알고 하는 말이 정녕 아닐진데
삼촌 할아버지가 싫지 않을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첫 번째 만남은 바람 불고 몹시 추운 사월의 예당지였다.
예당지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아빠 손을 잡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더니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배꼽인사를 하며 몇 살이냐는 물음에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말없이 다섯 손가락을 펴던 녀석이
두 번째 만남부터는 멀리서 모습만 보여도 아빠 손을 뿌리치고
달려와 품에 안기는 거였다.
그 후 이박삼일이상의 두 가족의 출 조가 두 번 이루어지면서
헤어져 집에 도착하면 보고 싶고 눈에 어리는 녀석이 되었다.
사실 나에게만 살갑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낚시터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잘 안기고 정이가게 하는 녀석이다.
낚시터에 어린아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포탄 같은 존재인데
이 녀석은 지렁이 통만 줘도 하루 종일 지루한지 모르고 잘도 논다.
늘이고 줄이고 줄줄이 늘어놓고 길이도 재고 작은 물고기를
떡밥 그릇에 담아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풀어주고
애써 낚은 붕어를 “할아버지 풀어주자, 내가 살려주고 싶어”
낚는 족족 방생을 하는 좋은 일은 혼자 다 한다.
어느 순간 조용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텐트에 들어가 잠자고 있고
끼니가 지나 배가 고파거나 졸려도 칭얼거리는 모습 한 번
본 적이 없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이들을 보호가 너무 지나쳐 나약하게 만들고
너무 청결과 안전을 앞세워 자연과 동화 시키는 걸 꺼린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흙을 밟고 태양아래서 검게 그을리기도 하는
아이들은 그 흔한 아토피도 절대 걸리는 일이 없다.
자연과 함께하는 아이들은 인성 또한 순수하고 정이 많다.
소양호에서 삼박사일의 낚시가 끝나 헤어지는 순간
가슴에 안기며 하는 말에 오늘의 여정이 계획되었다.
“삼촌 할아버지 우리 딴 집에서 만나서 세 밤만 자자”
딴 집이란 밖에서 같이 지내자는 말이고 난 기꺼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일이 바로 오늘이고 텐트에 야영 장비를 갖추고
이것저곳을 거쳐 이곳에 이른 것이다.
이 아이가 성년이 되고 이 세상에 내가 없을 때에도
추억 저편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다섯 살 때의 이야기가 기억으로 남을지 의문이지만
오늘 이후에도 많을 날들을 함께 할 예정이니 아마도
잊진 않으리라!
혹 누가 알겠는가!
낚시를 취미로 하며 낚시전문가로 레저의 최고봉으로 올려놓을지.
오늘 난 또 새로운 약속을 했다.
다음은 여수 삼박사일의 벵에돔낚시를.
아이를 빙자한 내 욕심 채우기일지라도 난 녀석이 좋다.
아이 아빠와 엄마의 낚시사랑과 기꺼이 함께하는 낚시친구 사이라
그 것 또한 값지고 소중하다.
‘시윤아! 사랑해!’
溪流이갑철
알림
마이웨이 낚시이야기
;)
